[글로벌 이슈/하정민]진영논리 거부해 ‘상원의 왕’ 된 맨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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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맨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 지난달 5일 워싱턴 의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을 ‘온건한 보수주의 민주당원’이라고 칭하는 그는 집권 민주당 소속임에도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최저임금 인상, 부양안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소신인 낙태 반대 등에 대해서는 야당인 공화당과 적극 협력한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맨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 지난달 5일 워싱턴 의회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을 ‘온건한 보수주의 민주당원’이라고 칭하는 그는 집권 민주당 소속임에도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최저임금 인상, 부양안 등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소신인 낙태 반대 등에 대해서는 야당인 공화당과 적극 협력한다. 워싱턴=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미국의 부족주의가 위험한 수준이다. 타협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한다.”

미국의 집권 민주당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평가받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이 2월 진보매체 뉴리퍼블릭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를 우려하며 한 말이다. 2010년 상원에 입성한 그는 오바마케어 등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정책에 반대표를 던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당 동료가 반대한 반(反)이민, 반낙태, 보수대법관 임명 등에 찬성했다. 부양안, 최저임금 인상, 선거구제 개편 등 조 바이든 현 행정부의 주요 정책 또한 반대하고 있다.

당과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지역구 사정 때문이다.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인 웨스트버지니아는 2018년 기준 중위소득이 4만4097달러(약 5071만 원)로 미국 50개 주 중 가장 낮다. 180만 인구의 대부분은 ‘힐빌리’ ‘레드넥’으로 불리는 백인 저학력 저소득층이다. 주요 도시 헌팅턴은 마약 문제가 심각해 ‘미국의 마약 수도’로 불린다. 인구가 각각 약 4000만 명, 2000만 명이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인재와 자원을 빨아들이는 민주당 텃밭 캘리포니아나 뉴욕주와 다른 시공간에 있다. 그가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이곳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1982년부터 주의회 의원, 주지사를 거쳐 연방 상원까지 입성한 것이 놀라울 정도다.

1월 출범한 상원이 민주당 50석, 공화당 50석으로 이뤄진 것은 그의 몸값을 극대화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특정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에서 한 명의 이탈자도 없어야 하고 당연직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또한 캐스팅보터로 가세해야 한다. 맨친이 반대표를 던지면 무위로 돌아간다. 가디언이 ‘백악관에 있는 사람은 바이든이지만 대통령직을 운영하는 이는 맨친’, 뉴리퍼블릭이 그를 ‘상원의 왕’이라고 평한 이유다.

그는 단순히 의원직 연장만을 위해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시간당 7.25달러인 연방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은 산업 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민주당 정권만의 탓이 아니라며 “설사 공화당이 집권해도 웨스트버지니아에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실 아칸소, 켄터키, 미시시피 등 인구가 적고 낙후된 어떤 주를 대입해도 통하는 말이다.

그는 현재 바이든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3조5000억 달러(약 4025조 원)의 부양안 통과 또한 재정적자 증가, 인플레 위험 증대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1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인을 돕기 위해 이미 5조4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미 지출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새 부양안이 주장하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정확한 목표가 어디인지를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진보진영은 이번 부양안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뉴딜’ 이후 가장 중요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돈이 기후변화, 이민 및 건강보험 개혁 등 찬반양론이 많은 정책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이가 적지 않다. 맨친의 말대로 코로나19에 따른 급한 불을 어지간히 껐는데도 바이든 행정부가 거듭 민주당표 정책에만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려 하는 것에 의구심을 보내는 미국인이 많다는 뜻이다. 1일 초당파 단체 노레이블스가 유권자 9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새 부양안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며 ‘통과’보다는 ‘전략적 중단’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훗날 통과가 된다고 해도 우선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부터 제대로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몇몇 민주당 의원의 행보는 맨친을 돋보이게 한다. 셰러드 브라운 상원의원(오하이오)은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에 2%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 상승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주가 상승에 반하는 정책을 도입하면 미국 금융과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한데도 세금으로 부양안 재원부터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앞뒤 안 재고 뛰어든다는 평이 나온다. 세계 곳곳에서 대중영합주의를 앞세운 정치인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공화당 첩자’란 일각의 비판에도 진영논리 대신 소신과 원칙을 중시하는 맨친에게 눈길이 간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진영논리 거부#상원의 왕#조 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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