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北 장단에 南 장구치면 美 춤출까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21-08-05 03:00수정 2021-08-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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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 셈 끝났으니 북-미 멍석 깔라는데
다시 어설픈 중재 나섰다간 만신창이 될라
이철희 논설위원
북한 김여정은 2일 담화에서 통신선 복원에 대해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 놓은 것뿐”이라며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라고 했다. 통신선 복원 소식에 “가뭄 깊은 대지에 소나기 소리”라던 여당 대표나 “천금과도 같은 남북 소통의 통로”라던 통일부 장관이 듣기 무색할 야멸친 언사지만, 사실 그것은 김정은이 올해 1월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밝힌 ‘대남 셈법’ 그대로다.

당시 김정은은 ‘3년 전 봄날’을 거론하며 그때로의 복귀 여부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가는 지불한 것만큼, 노력한 것만큼 받게 된다. 우리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합의 이행을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해주면 된다.”

그 말대로라면 통신선 재연결은 남측이 그간 보여준 성의와 노력이 가상해서 내준, 딱 그만큼의 보상이다. 작년 6월 북한이 통신선을 끊으면서 이유로 들었던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남측 정부는 국내외의 온갖 비판을 무릅쓰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고 최근 그 법에 따라 경찰 수사와 검찰 송치까지 진행했다. 북한은 그에 상응한 셈을 치렀다는 얘기다.

사실 많은 이들이 통신선 복원 자체보다 더 주목한 대목은 7·27 정전협정 체결일에 맞춘 이벤트가 성사되기까지 남북 정상이 ‘여러 차례’ 친서를 교환했다는 점이었다. 당장 여권 내부에서 4차 남북 정상회담의 기대감에 들뜬 목소리가 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청와대는 ‘4월부터 여러 차례’라고 발표했고, 북한 조선중앙통신도 ‘최근 여러 차례’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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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제 국가정보원은 국회에 ‘두 차례 교환’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선 ‘10여 차례’라고도 전했지만, 친서는 4·27 판문점선언 3주년 전후와 5·21 한미 정상회담 이후 두 번에 걸쳐 4통이 오간 것이다. 한 차례가 아닌 ‘두 차례’여서 ‘여러 차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어감 차이는 엉뚱한 추측 또는 오해를 낳기 십상이다. 두 차례 친서 교환은 ‘충분한 소통’보다는 ‘기대의 확인’ 정도로 보는 게 적당할 것이다.

지금 김정은의 관심은 남한이 아닌 미국에 있다. 대북제재에 자연재해에 코로나19까지 3중고에 시달리는 처지에서 김정은은 자기 입으로 식량난을 시인했다. 어떻게든 고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이 턱밑까지 차올라 와 있다. 코로나 유입 공포감 속에서도 대외 행보를 서서히 준비하던 차다. 다만 남한이 아무리 남북관계에서 ‘자율적 공간’을 확보했다 한들 모든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음을 김정은도 모르지 않는다.

남측에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또 다른 숙제를 던진 것도 그 때문이다. 3년 전 그랬던 것처럼 미국과 대화할 만한 분위기 조성에 나서 달라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끊었던 통신선만 달랑 이어 놓고 그걸로 1차 계산은 끝났으니 다음 숙제도 해내면 다시 주판알을 튕겨 보겠다는 고약한 태도지만, 북한에 목매 온 문재인 정부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나섰고, 결국 청와대는 미국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미국으로선 동맹국의 뜻을 야박하게 무시할 수도 없지만, 불량국가의 못된 버릇을 그대로 받아줄 수도 없다. 물론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나선다면 훈련 일정을 미루는 정도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자면 북한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이 한미 간 이간질 이후 입을 싹 씻는다면? 동맹 불신과 내부 갈등으로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누구겠는가.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북한 장단#남북관계#미국#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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