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광영]음식물쓰레기 늪에 빠진 한 청소부의 외로운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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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차장
신광영 사회부 차장
쓰레기 청소부의 작업복은 형광색이다. 깜깜한 새벽에 거리에서 일하려니 ‘보호색’ 유니폼을 입는다. 낮에 집 앞에 쓰레기가 내놓여 있으면 미관을 해치고, 사람들 틈으로 청소차가 지나면 악취와 소음 민원이 많아진다고 한다.

청소부들은 청소차 뒤편 작은 발판 위에 발을 딛고 도로를 누빈다. 음주 차량에 치여 죽거나 다치는 일이 생기지만 사람이 없는 틈을 타 빠르게 쓰레기를 치우려는 고육지책이다.

13일 부산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다 저장고에 추락해 숨진 50대 청소노동자 역시 미끄러운 발판 위에서 작업을 했다. 그는 수거차가 음식물쓰레기를 저장고 안으로 잘 비워낼 수 있게 삽으로 잔여물을 긁어내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형광색 작업복 차림이었다. 그가 깨끗이 긁어내야 다시 수거하러 나가는 트럭이 길거리에 오물을 떨어뜨리지 않는다.

사고 당시 그가 서 있던 쓰레기처리장 바닥은 겨울 빙판길처럼 미끄러웠다. 하루 수십 대의 수거차가 오가며 바닥은 음식물 기름기와 습기로 겹겹이 코팅됐다. 그가 갑자기 중심을 잃고 거대한 늪 속으로 추락하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보면서 평소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집 밖의 음식물쓰레기 수거통 문을 열 때면 나는 악취와 불쾌한 비주얼을 피해 마스크 쓴 얼굴을 한껏 뒤로 돌린다. 음식물들을 서둘러 수거통에 털어 넣고 계속 고개를 돌린 채로 문을 닫는다. 그러곤 쓰레기가 담겼던 비닐이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말아 비닐 쓰레기통에 후다닥 던진다.

눈을 피하고 코를 틀어막았던 그런 쓰레기가 하루 수십 t씩 모이는 곳이 그의 일터였다. 사고 당시 3m 깊이의 저장고에 음식물쓰레기는 1m만 차 있었다. 살아나올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요즘 같은 폭염에는 음식물쓰레기에서 수분이 많이 나와 늪이 되어 버린다. 고체라면 딛고서, 액체라면 헤엄쳐서라도 나왔을 텐데 늪은 허우적거릴수록 깊이 빠져든다. 그는 음식물찌꺼기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위험을 직원들도 알고, 업체 측도 알았지만 저장고 주변에는 사다리도, 구명튜브도, 하다못해 밧줄도 없었다. 2인 1조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은 크레인을 동원해 동료를 구하려다 그 역시 저장고 안으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두 달 전인 5월 24일 새벽 3시 같은 지역의 다른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에서도 30대 직원이 비슷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최소한의 생존 장치는 갖춰지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3D’ 업종 종사자들 없이는 단 하루도 도시를 지탱할 수 없다. 그들만큼 필수불가결한 직업인도 드물다. 하지만 ‘3D’는 ‘3비(非)’ 취급을 받는다. 노고는 기억되지 않고, 위험은 개선되지 않으며, 사고 책임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다.

청소부의 형광색 작업복은 소방관, 경찰관, 군인 같은 제복 공무원(Man In Uniform)의 제복과 비교해도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얼룩진 작업복을 입고 새벽 근무를 나서는 그들에게 우리는 모두 빚지고 있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쓰레기 청소부#형광색 작업복#음식물쓰레기 늪#외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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