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보 한 묶음 시대의 생존 전략[오늘과 내일/김용석]

김용석 산업1부장 입력 2021-05-29 03:00수정 2021-05-2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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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대외 정책에 활용
국가의 힘 키우려면 기업의 힘 강해져야
김용석 산업1부장
쿼드 참여국인 미국과 호주, 일본, 인도를 지도에서 연결하면 남중국해를 지나는 선이 그려진다. 대륙 세력인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는 저지선이다.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BBC(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공급망을 결속하고 첨단기술 동맹을 강화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머릿속엔 이와 비슷한 중국 저지선이 여러 개 그려졌을 거라 생각한다.

먼저 미국과 한국, 대만을 연결하는 ‘중국 반도체 저지선’이다. 회로 선폭 5나노급 최첨단 반도체를 미국에 우선 제공하는 공급망은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방어선이 된다.

코로나19 백신을 가진 미국과 바이오 생산 2위인 한국을 연결해 인도태평양 백신 허브를 만들자는 구상을 통해선 이 지역 확장을 노리는 중국의 백신 리더십에 대응하는 저지선을 그릴 수 있다. 미국 내 전기차 공장과 세계 2위 배터리 생산국 한국을 연결하는 공급망은 기후변화 리더십 경쟁에서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의 공세를 막아내는 중요한 방어선이 될 것이다. 미국이 차세대 통신기술 공동개발을 제안한 것은 5세대(5G) 통신 절대 강자인 중국을 둘러싸는 포위선을 그리기 위해서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통신기술 동맹을 맺었고, 아프리카와 동유럽에선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는 통신사업자가 중국 편에 맞서 사업권을 따내도록 자금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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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BBC와 ICT(정보통신기술) 기업 몸값이 높아진 이유는 바이든 정부 대외 정책 핵심인 중국 저지선을 구상하는 데 딱 들어맞는 퍼즐 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는 한미 협상에서 중요한 지렛대가 됐다.

이런 역할을 한 기업들에 우리 정부가 빚을 졌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기업과 국가의 힘이 하나로 묶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빚졌다고 하기엔 이미 공동운명체다. 지금 상황은 기업의 힘을 키우는 것이 국가의 힘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음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기업인들은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지각변동에 대해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의 머릿속엔 바이든의 구상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 중심의 연결선이 그려져야 한다고 본다.

먼저 한국 BBC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공급망이다. 일례로 한국 반도체 국제 분업에서 일본의 소재·부품·장비는 여전히 중요한 고리 중 하나지만 여러 갈등으로 불안감이 남아 있다. 배터리에선 중국이 쥐고 있는 소재 공급망이 중요한데, 이는 여전히 기업만의 숙제로 남아 있다. 바이오에선 기술이전 협력 구도가 뚜렷하지 않다. 1980년대 한국이 일본을 대신할 반도체 공급망으로 성장했을 땐 미국의 적극적인 기술이전이 이뤄졌었다.

또 하나는 중국 경제에 결속돼 있는 상당수 국내 기업의 생명줄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와 안보가 한데 묶이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큰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제조업의 탈(脫)중국화가 불가피하다는 예측도 나온다. 주요 대기업을 뺀 나머지 기업 생태계가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4대 그룹의 44조 원 투자가 바이든의 “생큐”를 이끌어낸 데 만족할 때가 아니다. 지난 정상회담에서 기업이 정부에 힘을 더하는 걸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정부가 기업에 힘을 더하는 장면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경제 안보#생존 전략#기업#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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