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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혁명이 만든 패션[간호섭의 패션 談談]〈54〉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입력 2021-05-26 03:00업데이트 2021-05-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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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퀼로트와 노란 조끼
루이레오폴 부알리 ‘상퀼로트로 분장한 가수 슈나르’, 1792년.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혁명이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뒤집어엎어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순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들이 나타납니다. 코로나19로 세계인들이 생활의 혁명을 겪으며 패션이 더욱 실용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살아 있는 사례입니다. 몸에 달라붙지 않고 편안한 실루엣, 그리고 남녀 공히 사이즈만 상관없다면 바꿔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상의와 바지 등이 대표적이죠.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대변하고 또한 혁명 이후의 삶을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상퀼로트(sans-culotte)’입니다. 상퀼로트는 프랑스어로 당시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반바지(cullotte)를 입지 않는(sans) 사람들을 뜻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시민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계몽사상과 미국의 독립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에 부패하고 무능한 왕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죠. 그들이 가진 부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적 요구가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솟는 물가와 인구의 증가, 그리고 왕실의 재정 악화에 따른 세금 증가로 인해 민중의 삶은 피폐해져 갔죠. 이렇게 촉발된 프랑스혁명은 결국 국왕인 루이 16세를 공개 처형하며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랑스혁명 이후 상류층 남성들이 착용했던 층층이 긴 가발과 하이힐, 그리고 딱 붙는 타이츠에 입었던 반바지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 그 자리에 넉넉하고 편안한 현대 남성복 바지의 원형이 탄생했으니 그것이 바로 상퀼로트입니다. 타도의 대상들이 즐겨 하던 패션을 따를 수도 없었겠지만, 상퀼로트는 혁명의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입니다.

상퀼로트는 현대에 와서 ‘노란 조끼(Gilet Jaune)’로 재탄생했습니다. 2018년 11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반대로 촉발된 시위가 점차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습니다.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노란색 형광 조끼를 시위 참가자들이 입으면서 일명 ‘노란 조끼 시위’로 불렸습니다. 시위 참가자들 대부분은 자동차가 꼭 필요한 도심 외곽의 주거인이거나 운전사와 같은 노동자 계층이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부자 직접세인 법인세와 부유세 등은 인하하면서 서민 간접세인 유류세를 올리는 것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죠. 경제 불황에 세금 인상 그리고 계층 간의 갈등 폭발이 프랑스혁명과 닮아 있고 상퀼로트와 같이 노란 조끼라는 패션으로 구심점을 갖는 것도 같습니다.

상퀼로트라는 바지 그리고 노란 조끼 모두 혁명이 만든 패션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혁명이 만든 이 패션은 그 어느 패션보다도 실용적이며 우리의 삶 또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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