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선미]‘찐멘토’ 윤여정

김선미 논설위원 입력 2021-03-17 03:00수정 2021-03-17 09:27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본인이 말하길 “특별히 전성기나 대표작이 없었던 것 같다”는 나이 일흔넷의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제93회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아시아계로는 5번째다. 이미 거머쥔 다른 여우조연상만 33개.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우리 사회에서 ‘조연’이 이토록 주목받은 적이 있던가.

▷남다른 멘토로서 그의 모습은 영화 ‘여배우들’(2009년)에서 이미 돋보였다. 이미숙 고현정 등 쟁쟁한 후배 여배우들과 함께 출연했던 이 영화는 배우들의 실제 삶이 반영된 즉흥 대사가 많았다. 윤여정은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인간의 본성이 나만 주목받고 싶은 것이지만 그건 욕심”이라고. “살아보니 박수를 받으면 돌멩이질도 그만큼 받더라.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 분할 것도 억울해할 것도 없다.”

▷윤여정은 1966년 TBC 탤런트 공채 3기로 데뷔해 연기생활 55년째다. 한양대 국문과 재학 시절 신종 직업으로 뜨던 탤런트에 도전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딸들을 키우는 양호교사 어머니가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서. 드라마 ‘장희빈’과 영화 ‘화녀’로 유명해진 뒤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 가서 13년을 살았지만 헤어졌다. 고생하며 아이들을 키운 건 그였다. 그의 어머니도, 그 자신도 ‘생명력 강한 미나리’였다.

▷‘미나리 리더십’의 핵심은 겸손과 섬김이다. 겸손은 자신의 객관화에서 출발한다. “미모도 재능도 없기 때문에 노력한다”는 그는 박카스 아줌마(영화 ‘죽여주는 여자’)로도 치매 걸린 할머니(영화 ‘계춘할망’)로도 변신한다. 조연이라고 뒤로 빠지지도 않는다. 주연이 빛나도록 배려하면서 필요할 때 나선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가 삶은 밤을 씹어 손자에게 주는 장면,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라는 핵심 대사는 그가 제안한 것이다. 제작비 200만 달러(약 22억 원)의 초저예산 영화를 찍으며 후배들을 살뜰히 챙긴 것도 그였다.

관련기사
▷윤여정은 욕심의 힘을 뺀 궁극의 나이스 스윙을 떠올리게 한다. 나이 들었다고 무게 잡지 않고, 밥값을 내고, 남 탓 안 하며, 유머가 있다. 아카데미 후보로 오르자 “여러분의 응원이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워 올림픽 선수들의 심적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창창한 나이일 때는 빨리 깨질수록 좋다.” “나는 나같이 살면 된다.” “인생이 별거 아니다. 재밌게 사는 게 제일이다.” 윤여정은 요즘 말로 ‘찐멘토’(진정한 멘토)다. 기성세대도 미래세대도 한국인도 미국인도 그에게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위로를 얻는다.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김선미 논설위원 kimsunmi@donga.com
#찐멘토#윤여정#배우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