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어진 질문… “이거 모르세요?”[2030세상/김소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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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얼마 전 회사에서 ‘트렌디한 콘텐츠’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예시를 모았다. 넷은 성별이 같고 나이와 업무도 비슷하다. 남들이 보면 비슷비슷한 사람들로 보일 것 같다. 우리는 서로 가져온 콘텐츠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모두 너무 다른 걸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회의가 끝나고도 계속 궁금했다. 왜 아무것도 겹치지 않았을까? 서로 겹칠 것 같은 내용은 미리 뺀 것일까?

궁금해서 나와 비슷한 8명에게 요즘 좋아하는 콘텐츠를 따로 물어보았다. A는 아이돌 브이로그를, B는 모 매거진의 리빙 콘텐츠를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다. 귀농한 부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C도 있었지만 D는 여전히 TV 예능 ‘놀라운 토요일’을 가장 좋아했다. “저는 ‘뜨뜨뜨뜨’를 좋아해요.” 옆자리 동료 E가 말했다. 귀를 의심하며 검색창에 ‘뜨뜨뜨뜨’를 쳐 보았다. 구독자가 157만 명이나 되는 게임 유튜버였다.

우리가 ‘트렌디한 콘텐츠’ 회의에서 일부러 서로를 배려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예 달라져 버린 것이다. 이른바 ‘메가 트렌드’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큰 물결이 나의 일과 삶에 끼치는 영향은 확실히 적어졌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이거 모르세요?”나 “이거 안 보셨어요?”라는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내 뒷자리에는 ‘MZ세대’에 속하는 막내가 있다. 나는 30대 초반이지만 이미 최신 트렌드를 습득하기에 조금 지난 나이로 분류되기 때문에 온갖 자료와 데이터로 그 세대를 배웠다. 그렇게 ‘배운’ 바에 따르면, 이 세대는 글을 읽지 않는다. 길고 진지한 것이 질색인 이 세대는 틱톡이나 릴스 같은 쇼트폼 콘텐츠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팀 막내는 이상하게도 텍스트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 같다. 책상에는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잡지들이 종종 놓여 있다. 점심시간에 혼자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리에서 책을 읽는 모습도 자주 봤다.

뜨뜨뜨뜨를 좋아하는 동료와 책을 읽는 막내 사이에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MZ세대라는 이름 안에 하나로 묶여 반경 2m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반면 각자의 스크린 속 세상은 아예 다르다. 그건 우리뿐 아니라 개별 소비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까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생각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메가 트렌드를 통한 소비자 분석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마케팅 일을 하며 항상 고민한다. 어떻게 정확한 경로로 정확한 메시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전할까? 경험이 쌓이면 노련하게 경로를 찾고, 정확하며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사실은 갈수록 어렵다. 가끔은 엄청나게 많은 문 앞에서 종일 서성이는 느낌이 든다. 메시지를 제대로 포장했는지 고민하면서, ‘바로 그 사람’이 어느 문 뒤에 있을지 초조해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빵순이, 빵돌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라는 문구를 쓰고 게시물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롤케이크 사진 위에 쓰인 이 문구가 부디 맞는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김소라 요기요 마케터
#질문#트렌디#콘텐츠#뜨뜨뜨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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