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윤석열 對 선거귀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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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무장해제’ 위기에 사퇴 승부수
보기보다 정치 잘 맞는 ‘여의도 체질’
文 폭정에 ‘尹’ 환호, 정치본능 깨웠나
‘국정 등신·선거 귀신’ 상대로 開戰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내일부터 딱 1년 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선을 1년 앞두고 던진 윤석열의 승부수는 극적(劇的)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윤석열 본인이 만들었다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리인으로 세운 추미애 박범계가 밟으면 밟을수록 정치적으로 커졌다. 그의 수족을 자른 데 이어 존재 기반인 검찰의 손발마저 잘라내려 하자 뛰쳐나가 홀로 선 것이다. 사실상 그의 정치적 성장의 기록이 돼버린 이 드라마의 제작사는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을 키운 건 팔 할이 문 정권이다.

정치가 생물이라 단언할 순 없으나 윤석열은 이번 대선에 뛰어들 것이다. 아니,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적확(的確)하다. 그는 3일 “내가 총장직을 지키고 있어서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도입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며 “내가 그만둬야 멈추는 것 아니냐”고 피력했다고 한다. 과연 그는 중수청 무산을 위해서 사퇴한 것인가.

입장을 바꿔 보자. 그러면 여권은 윤석열이 물러났다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포기할까. 아닐 것이다. 눈엣가시 같은 그가 물러났으니 당장 한숨을 돌렸을지 몰라도 검찰에 제2, 제3의 윤석열 검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중수청을 추진했던 진짜 이유가 ‘산 권력’ 수사를 봉쇄하고, 더 좁게는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의 ‘퇴임 후 안전’을 도모하는 것인 만큼 4월 보선 이후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카드다.

당연히 윤석열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에게 중수청은 사퇴의 이유라기보다는 ‘계기’로 보인다. 그로서는 자신과 처가 등 주변을 향해 시시각각 조여 오는 정권의 올가미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무엇보다 판검사의 경우 공직선거일 1년 전까지 그만두지 않으면 출마할 수 없도록 한 ‘윤석열 출마 제한법’이 발의된 게 결정적 계기가 아니었을까.

이 법안은 사람 하나를 콕 집어 법을 찍어내려는 잔인함, 판검사 외 다른 사법 직역과의 형평성 문제, 공무담임권 제한 등 위헌 소지를 담은 말도 안 되는 법안이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법안들을 기어코 관철시키는 입법독재를 자행해 온 게 현 여권이다. 윤석열로서는 대선 출마라는 마지막 무기마저 무장해제당한 채 야인(野人)으로 내려가는 데 공포감을 느꼈을 수밖에 없다. 친문세력이 찍으면 무슨 수를 쓰든 보복하고야 마는 집요함을 잘 아는 터. 하여, 오늘 즉 3월 8일까지는 사퇴해야 하는데 마침 중수청 논란이 불을 지른 것이다.

또 하나, 윤석열은 애초 정치할 뜻은 없었을지 모르나 생각보다 정치에 잘 맞는 사람이다. 책 10쪽을 읽고도 한 권을 읽은 듯 풀어내는 속칭 구라, 후배들을 모아 술자리를 만들고 그 구라를 푸는 보스 기질, ‘검수완박’에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으로 응수하는 조어(造語) 능력…. 정치는 말인데, 그 구사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도 ‘여의도 체질’이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과 폭정에 지친 이들이 ‘윤석열’을 환호하는 소리가 잠자던 그의 정치 본능을 깨웠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택은 현직 검찰총장이 대선판으로 직행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그 선택으로 이제 사활을 건 일전이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그의 상대는 어쩌면 여야의 다른 대선주자가 아닐지 모른다. 정권의 치부를 속속들이 잘 아는 ‘검사 대통령’의 탄생을 가장 끔찍한 악몽의 시나리오로 여기는 집권세력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세력은 국회와 행정부는 물론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같은 심판기관까지 사실상 장악해 실탄도 충분하고 ‘뒷배’도 든든하다. 게다가 수치심도 없어 선거가 임박하면 나라의 얼굴인 대통령부터 나서 몇 번이나 죽었던 공항을 살려내고, 천문학적인 현금을 무슨 ‘○○지원금’이니 ‘××수당’ 등의 이름으로 뿌려대는 현대판 ‘고무신 선거’를 서슴지 않는다.

더 무서운 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 대통령이나 그 ‘친구’의 당선을 위해 불법 댓글을 조작하거나 표적수사를 벌이고, 입막음을 하거나 경쟁자를 주저앉히기 위해 공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여당 후보 공약 이행을 위한 예타(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기본이며 선거비리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애프터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그러는 사이 국정은 멍들고 민생은 치이며 국고는 비어가지만 선거에 이기고 나면 그만이다. 이렇게 ‘국정(國政)은 등신’이나 ‘선거는 귀신’을 상대로 한 윤석열의 전쟁. 이제 시작됐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윤석열#선거귀신#여의도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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