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창업가들의 ‘新사업보국’[오늘과 내일/김용석]

김용석 산업1부장 입력 2021-03-06 03:00수정 2021-03-06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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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기업가의 사회 기여
혁신가치로 기업가 정신 이어야
김용석 산업1부장
빌 게이츠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한다는 연구소 테이블 한편에는 기술자와 과학자가 앉고 다른 편에는 특허 전문가들이 앉는다. 기후변화 위기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이타적인 아이디어를 과학자들이 제시하면 특허 전문가들은 이를 배타적인 지식재산권으로 전환한다.

빌 게이츠가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혁신 중 하나로 원자력발전 기술 기업 테라파워를 설립한 것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그는 최근 발간한 책에서 “청정에너지 연구개발 투자를 단지 호의나 자선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많은 대기업이 탄생하고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새로운 산업의 기회”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은 경쟁자보다 큰 가치를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혁신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하려 노력하는 이유다. 그렇게 만들어낸 수익 등 부가가치를 주주와 임직원, 소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나눔으로써 기업은 선(善)을 실천한다.

삼성, 현대, SK, LG로 대표되는 한국 주요 제조기업의 창업자와 후계자들은 ‘사업보국’(기업을 일으켜 국가와 인류에 기여한다)이라는 말로 이런 의지를 다져 왔다. 이들은 1960년대부터 시작해 TV와 컴퓨터,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 결실은 기업 스스로 성장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덕분에 더 풍요로운 삶을 얻었다. 풍요로운 삶이 민주주의 발달의 기반이 됐다는 데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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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정보기술(IT)기업을 창업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재산 절반을 기부해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쓰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등 IT 창업가들의 기부 선언이 이어졌다. 김범수 의장이 짧은 시간에 10조 원에 달하는 큰 부를 창출한 것은 자본주의의 힘이다. 김 의장은 스스로 자본주의가 낳은 불공정을 해소함으로써 ‘불완전한 자본주의’를 보완하겠다는 생각이라고 한다.

기업을 통해 국가와 인류의 풍요에 기여하는 것이 ‘사업보국’이었다면 기업을 통해 사회 변화를 추구하고 모순을 해소하려는 것을 ‘신(新)사업보국’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IT기업뿐 아니라 주요 제조 대기업들도 가치 분배 대상을 사회와 생태계 전체로 확장하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업보국’은 진화하고 있다. 김범수 의장 등 IT 창업가들이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에 오르는 등 재계 주류로 떠오르면서 이런 흐름은 더 거세질 것 같다.

김 의장의 5조 원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거액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 IT 창업가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변화의 촉매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조 원은 큰돈이긴 하지만 국가 예산 중 올해 생계급여 예산(약 4조6000억 원)과 비슷한 규모다. 5조 원으로 딱 한 해 동안 기초생활수급 가구에 주는 생계급여를 배로 늘린다면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생계급여도 중요하지만 이는 기업이 아닌 국가의 몫이다. 반면 5조 원을 종잣돈으로 기업가와 인재들이 혁신 기술 등을 개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면 그 효과가 훨씬 클 것이다.

사회 변화의 원동력을 선의에만 기댄다면 강한 생명력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투자를 통한 혁신이야말로 기업가가 창출해 사회와 나눠야 할 가치의 근원이다. 김 의장과 같이 기부를 실천하는 창업가들이 종국에는 자선가가 아니라 ‘신사업보국을 실천한 기업가’로 존경받기를 기대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창업가#빌 게이츠#이산화탄소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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