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버는 일[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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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어릴 때 취미랑 특기 헷갈리지 않았어?”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친다. 사물함에 취미, 특기, 장래희망을 써 붙이던 시절. 고작 열 해 가까이를 산 어린이에게 취미와 특기를 구별하는 것은 퍽 버거운 일이었다. 취미는 좋아하는 것, 특기는 잘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부연 설명을 듣고 나서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거 아닌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또래 대비 곧잘 하는 편이었다. 좋아해서 잘하게 된 건지, 잘해서 좋아하게 된 건지 선후관계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중요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커서도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거니 했다. 취미=그림 그리기, 특기=그림 그리기, 장래희망=화가. ‘취미=특기=장래희망’의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었다. 흥미와 역량을 분리해 생각하기 어려웠던, 그것들이 너무나 매끄럽게 밥벌이로 이어질 거라 오해하던 시절.

그러나 발 디딘 세계가 넓어질수록 ‘좋아하는 것’들의 배신이 줄을 이었다. 숱한 관심과 시도들은 결국 ‘잘하는 것’이 되지 못한 채 취미의 경계에서 피고 졌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나의 취미란에 탈락 없이 머무는 것들은 주로 ‘잘함’에 대한 기준이 없거나 불필요한 것들-여행, 독서 등-이다. 혹은 잘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들, 즉 좋아하기만 하는 것들.

특기란을 채우는 데에는 점점 용기가 필요했다. 스스로 무언가를 잘한다고 명명하는 것에 대해 면구스러움을 넘어 가소로운 마음마저 일었다. 자기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최소한의 증빙이 필요했다. 주로 점수나 타이틀로 대변되는 것들이었다. 오랜 기간 취미란에 갇혀 있던 글쓰기는 청탁을 받고 글을 쓴 지 몇 해가 지나서야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특기란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안다.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돈 버는 것과는 더욱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좋아하는 일=잘하는 일=돈 버는 일의 등식이 성립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그럭저럭 잘하는 일로 돈을 벌고,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자원과 마음을 할애한다. 몇몇은 잘하는 일의 영역으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 은밀한 욕심을 내보기도 하지만, 돈을 벌 깜냥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또한 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버는 일이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도 없다. 순수한 애정에 의무가 깃들 때, 때로는 부담이 설렘을 가로막기도 한다. 각각이 역할을 나누어 분화돼 있는 존재 방식도 사실은 썩 괜찮다. 어떤 일은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고 시도만으로 삶을 기대하게 한다. 어떤 일은 생계와 무관한 영역에 남도록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어떤 일은, 이 모든 일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상을 지탱한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을 한다. 출간 원고 작업이 한창이지만 감사히도 생계와는 무관하니 마음에 여유가 있다. 이달부터는 재즈보컬을 배운다. 영 자신은 없지만, 가슴이 뛴다.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김지영 한화생명 신사업부문 마케터
#취미#특기#장래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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