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22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 ‘선방’ 자랑할 때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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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경제가 22년 만에 처음 ―1%의 역성장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부진한 수치다. 3만2115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도 3만1000달러대로 내려앉았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국내외 주요 기관의 전망치 및 시장 기대치를 예상보다 뛰어넘는 수치이며 경제 규모 10위권 내 선진국들이 3∼8% 이상 역성장이 예상되는 것에 비하면 최상위권의 성장 실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고 가장 성장률이 높은 중국도 전년 6%에서 작년 2.3%로 3.7%포인트 낮아졌는데 한국은 하락 폭이 작았다는 자랑인 셈이다. 민간이 ―2.0%포인트 깎아내린 성장률을 정부가 재정으로 1%포인트 벌충해 ―1%로 막은 대목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뿌듯해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 하락 폭이 작았던 것은 ‘준비된’ 민간 부문이 신속히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언택트(비대면) 트렌드’를 타고 고화질 TV 등 가전제품 수출이 급증했고, 바이오 업체들은 코로나 진단키트를 개발해 전 세계에 공급했다. 세계적 수준의 택배시스템 덕에 늘어난 온라인 쇼핑이 소비 위축을 방어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반도체 기업들이 공격적 투자에 나서면서 설비투자가 6.8%나 늘어난 덕도 컸다. 정부의 적극 재정이 성장률 하락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로 인해 국가채무 또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경제가 큰 폭으로 반등하지 않으면 재정지출은 다음 세대에 큰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률 하락 폭이 작다는 것이 자랑이나 위안거리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이너스 성장’은 수많은 중소기업주와 자영업자, 실업자들의 눈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니던 직장을 잃고, 누군가는 사업이나 투자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에 이미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2019년 성장률 2.0%는 글로벌 금융위기, 외환위기, 2차 오일쇼크 때를 빼면 역대 최저다. 2% 이하 저성장을 2년 연속 경험하는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다. 우리는 지금 ‘지속적인 성장’과 ‘저성장 고착화’의 첨예한 갈림길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이 정체되면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비용과 국가채무를 감당할 방법이 없게 된다. 비상한 위기의식을 갖고 경제성장 엔진을 재가동하는 데 온 힘을 모아야 한다. 옹색한 위안거리를 찾아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마이너스#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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