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 중인 코치가 다른 팀 감독으로… 틀 깨는 스토브리그[인사이드&인사이트]

황규인 기자 입력 2020-11-20 03:00수정 2020-11-20 11:1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프로야구 감독 영입-육성의 세계
황규인 기자
프로야구 SK는 6일 김원형 두산 수석코치(48)를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시점이 묘했다. 이날은 두산이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김 감독은 포스트시즌 끝까지 두산에 남지 않고 곧바로 SK 지휘봉을 잡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코치를 ‘가을야구’ 도중 다른 팀 감독으로 보내주는 건 얼핏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도 두산은 ‘차라리 빨리 보내주는 게 낫다’고 판단해 기꺼이 양해했다. 어차피 다른 팀 감독으로 가기로 돼 있는 코치가 팀에 남아있어 봤자 팀 분위기만 뒤숭숭해진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한용덕 전 한화 감독(55)이었다. 한화는 두산과 KIA의 2017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 감독 선임 소식을 알렸다. 한 감독은 이미 한화로 가기로 약속한 상태에서 두산 수석코치로 한국시리즈를 치렀던 것이다. 두산은 이해 한국시리즈에서 정규시즌 1위 팀 KIA에 1승 4패로 무릎을 꿇었다.

KT 역시 2018년 두산 수석코치였던 이강철 감독(54)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KT가 감독 선임 사실을 알린 건 정규시즌 1위 팀 두산이 일본 미야자키에서 한국시리즈 준비를 하고 있던 그해 10월 20일이었다. 두산은 전년도 실패를 교훈 삼아 ‘먼저 감독 선임 발표를 해도 좋다’는 사인을 KT에 보냈다. 이 감독은 두산 수석코치로 한국시리즈를 치렀지만 두산은 SK에 2승 4패로 패했다.

주요기사
이런 이유로 올해 두산은 김 감독을 먼저 SK에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53)은 “김 감독이 SK로 떠나는 게 솔직히 내가 좋아할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빨리 가서 저쪽(SK) 스케줄도 짜야 할 것 같고 그래서 그냥 가라고 했다”며 웃었다.

○ ‘사단장’에서 ‘홀몸’이 된 감독들


LG 프렌차이즈 스타 출신으로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류지현 LG 감독이 19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SK 김 감독 사례는 아직 이례적인 케이스다. 하지만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팀이 포스트시즌 기간 중 감독 또는 단장을 교체하는 모습이 이제 아주 낯설지는 않다. KT에서 2018년 이강철 감독 선임 사실을 서둘러 발표한 데는 포스트시즌 기간 NC에서 이동욱 감독, 롯데에서 양상문 전 감독 선임 소식을 먼저 발표한 것도 영향을 줬다. 특히 양 전 감독은 LG 단장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팀을 옮겼다.

이렇게 포스트시즌 기간 중 감독 선임 사실을 발표할 수 있게 된 건 감독이 ‘홀몸’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감독 한 명을 선임하면 해당 감독 ‘사단’으로 통하는 코치진 여러 명이 감독을 따라 함께 팀을 옮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코치진과 입단 작업을 진행하는 절차도 필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런트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팀이 많기 때문에 감독 선임 발표 시기도 좀 더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여전히 ‘제 식구 챙기기’를 고집했다가는 기피 대상으로 평가받기 십상이다. 한 프로야구 팀 관계자는 “50대 후반 지도자가 이번 오프시즌 기간에 두 팀에서 감독 면접을 봤다. 두 팀 모두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 같았는데 이 지도자가 ‘코치진 6명도 같이 계약해 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고 전했다.

팀 무게중심이 프런트 쪽으로 기울어 간다는 건 구단 운영에서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통찰력이 뛰어난 일부 지도자만 ‘감(感)으로’ 느낄 수 있던 것을 이제는 트랙맨 같은 첨단 측정 장비를 통해 누구나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독재자형’이 다수를 차지했던 프로야구 감독 세계에서도 ‘데이터를 이해할 줄 아는 학구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 무명 선수+세이버메트릭스=명장


김원형 SK 감독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 NC다. NC는 2018년 6월 3일 창단(2011년) 때부터 지휘봉을 잡았던 김경문 현 국가대표팀 감독(62)의 사퇴를 발표하면서 유영준 당시 단장(58)이 감독 대행을 맡는다고 밝혔다. 프로야구 역사상 프런트 직원이 감독 대행을 맡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 전 단장은 야구선수 출신으로 장충고 등에서 야구 감독을 지냈지만 당시까지 프로에서 코치 경험도 없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2018시즌이 끝난 뒤 이동욱 수비코치(46)에게 감독 자리를 맡겼다. 이 감독은 롯데 유니폼을 입고 6년간 143경기에 나서 통산 타율 0.221, 5홈런, 26타점을 기록한 게 프로 1군 기록의 전부였던 ‘무명 선수’ 출신이다. 그 대신 롯데에서 방출 사흘 만에 퓨처스리그(2군) 코치 자리를 제안할 정도로 성실한 선수였고, 팀 훈련이 끝나면 컴퓨터 학원으로 달려가 ‘마이크로소프트(MS) 엑셀’을 공부하던 학구파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취재진과 대화할 때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타자가 홈런을 제외한 페어 타구를 때렸을 때 타율), DER(Defensive Efficiency Ratio·수비진이 홈런이 아닌 페어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하는 비율) 같은 세이버메트릭스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이런 ‘숫자 공부’가 없었다면 무명 선수가 부임 2년 만에 팀에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안기며 명장으로 거듭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명 선수 출신을 감독으로 기용하는 건 세이버메트릭스가 ‘기본 옵션’이 된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한 일이다. 2020 메이저리그 30개 팀 감독 가운데 8명은 메이저리그 출전 경험이 전혀 없다. 김광현 소속팀 세인트루이스를 이끌고 있는 마이크 실트 감독(52)은 메이저리그는커녕 마이너리그 출전 경험조차 없다. 그 대신 아마추어 코치로 명성을 쌓았다. 실트 감독은 메이저리그 풀타임 감독 첫해였던 지난해 팀을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챔피언으로 이끌면서 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탔고 이번 시즌에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 초보 감독에게는 코로나19가 기회?


‘초보 감독’은 팀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된다. SK 김원형 감독은 2년 총액 7억 원(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5000만 원)에 계약했다. 염경엽 전 SK 감독은 올해 연봉만 7억 원이었다. 13일부터 LG 지휘봉을 잡게 된 류지현 감독(49)도 2년 총액 9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에 계약했다. 역시 류중일 전 LG 감독(57)의 계약 조건(3년 총액 21억 원)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한 수도권 팀 관계자는 “예산 절약하겠다고 초보 감독을 뽑는 팀을 없을 것”이라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각 구단이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건 맞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는 포스트시즌 중에도 여러 구단으로부터 선수 방출 소식이 들려왔다. 이 역시 코로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면서 “인건비 문제로 우리 팀에서는 함께할 수 없지만 다른 팀에 가서 빨리 기회를 잡으라는 뜻으로 선수단 정리를 빨리 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팀 관계자는 “솔직히 한국은 선수 풀(Pool)이 좁기 때문에 자유계약선수(FA)를 사오는 게 가장 확실하게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씀씀이를 줄여야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한 경기라도 더 이기려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지도자에게 투자하는 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좋다. 각 팀이 감독 등 지도자 선임 소식을 알릴 때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역대 FA 계약을 보면 총액 기준 100억 원이 넘는 선수만 5명이다.

○ 지도자 키우는 ‘코치 아카데미’


‘프랜차이즈 스타’가 ‘준비된 지도자’로 성장해 ‘우리 팀’에 승리를 안겨주는 건 모든 야구팬들의 희망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1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류지현 감독 취임식에는 팬들이 ‘우윳빛깔 우리 감독님 꽃길만 걸으시길’이라고 메시지를 적어 보낸 화환이 눈에 띄었다. 류 감독은 LG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이 팀 지휘봉을 잡았다. 1994년 LG 신인 1차 지명자 출신인 류 감독은 2007, 2008년 메이저리그 시애틀로 연수를 다녀온 기간을 제외하고는 선수와 코치로 줄곧 LG 유니폼만 입은 성골 중의 성골이라고 할 수 있다…

류 감독은 오히려 이런 경력을 경계한다. 그는 “한 팀에만 너무 오래 있으면 다른 팀 특징을 잘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면서 “2007, 2008년에 연수를 떠날 때 구단에서 보내준 게 아니라 자비를 들였기 때문에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결국 그 용기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배경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류 감독처럼 모든 선수가 자비를 들여 해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을 수 있는 여건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코치 아카데미’를 운영해 2년차 이하 초보 코치들이 데이터 분석, 스포츠 역학, 조직 관리 등을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반응도 뜨겁다. 문정균 KBO 육성팀장은 “12월에 열리는 올해 코치 아카데미 신청자 접수를 마감한 결과 팀당 3명꼴인 30명 가까운 인원이 수강 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가을 야구#코치#감독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