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는 대선주자 지지율… “수치-순위보다 여론흐름 봐야”[인사이드&인사이트]

유성열 정치부 기자 입력 2020-11-23 03:00수정 2020-11-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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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대선조사 믿을 수 있나
유성열 정치부 기자
“어떻게 여론조사 결과가 이렇게 널뛸 수 있느냔 말이다.”

얼마 전 기자와 점심을 함께 한 야권 관계자는 매주 발표되고 있는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두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결과를) 만지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여론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왔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하면서 여론조사업체들은 윤 총장을 대선후보로 넣은 조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업체마다 지지율 수치가 크게 다른 데다 순위마저 요동치고 있어 그 이유와 배경을 놓고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 비슷한 시기에 실시해도 업체마다 다른 대선주자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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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총장이 야권의 대선주자로 본격적으로 부상한 건 10월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이후다. 윤 총장은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정치권에서는 “퇴임 후에 사실상 정치를 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발언 이후 여론조사업체들은 차기 대선주자 조사에 윤 총장을 포함시켰다. 리얼미터가 2일 발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윤 총장은 17.2%의 지지율로 공동선두(21.5%)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안철수(4.9%) 홍준표(4.7%) 오세훈(3.6%) 황교안(3.3%) 원희룡(3%) 등 야권의 유력 주자들을 뛰어넘은 결과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의 윤 총장에 대한 압박이 더욱 거세지자 윤 총장이 대선후보 지지도 1위로 뛰어오르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한길리서치가 11일 발표한 ‘여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윤 총장은 24.7%의 지지율로 이 대표(22.2%)와 이 지사(18.4%)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13일 발표된 조사에서는 윤 총장이 다시 3위로 밀려났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 따르면 윤 총장(11%)은 이 대표(19%)와 이 지사(19%)에 이어 3위로 내려앉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같은 날 발표한 ‘차기 대통령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윤 총장(11.1%)은 이 대표(21.1%)와 이 지사(20.9%)에 이어 3위였다.

그러다 이후 발표된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윤 총장이 다시 강세를 보였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17일 내놓은 조사에서 윤 총장은 이 대표, 이 지사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총장(42.5%)은 이 대표(42.3%)와 맞붙으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고, 이 지사(42.6%)와 맞붙는 경우엔 41.9%로 오차범위 내에서 뒤졌다.

○ 조사 방식에 따라 결과도 천차만별


이처럼 윤 총장에 대한 지지도가 여론조사업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에서도 “도대체 어떤 여론조사를 믿어야 하는 것이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동일 현상에 대한 여야의 평가도 엇갈린다. 여권은 윤 총장을 ‘정치인’으로 몰아붙이며 “하루빨리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고, 야권에서는 “우리 후보가 아니다”라며 윤 총장과 선을 긋는 목소리가 커졌다. 윤 총장의 지지도가 상승할수록 야권 후보의 지지도가 잠식되는 현상이 나타나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총장을) 야당 정치인이라 볼 수 없다”며 “확실하게 자기 소신을 가진 것에 대한 관심이지, 대선 후보로서 지지도가 높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단은 여론조사 자체가 잘못됐다기보다는 각 업체의 조사 방식이 달라서 생긴 현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기관별 조사 방법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윤 총장 지지도가 1위로 나온 한길리서치의 경우 심상정 안철수 윤석열 이낙연 이재명 홍준표 등 6명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고르는 방식으로 지지도를 물어봤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미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관련 행보를 시작한 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후보군에서 아예 빠졌다. 여론조사지에 야권 후보군이 별로 없자 조사에 응한 보수 성향 응답자가 상대적으로 윤 총장에게 몰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설계 자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길리서치의 경우 6명의 후보 중 제1야당인 우리 당 소속 후보는 단 1명도 없었다”며 “우리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윤 총장을 뽑을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좀 이상한 여론조사였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갤럽은 조사 대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말하도록 했다. 한길리서치가 ‘제한적 객관식’ 조사였다면 이는 일종의 ‘주관식’ 조사인 셈이다. 이렇게 하면 여론조사기관이 제시하는 ‘보기’가 없어 표심이 널리 분산된다는 특징이 있다. 대선 후보가 6명으로 한정됐던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던 윤 총장이 이틀 뒤 한국갤럽 조사에서 3위로 밀려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KSOI도 한국갤럽처럼 주관식은 아니지만 총 11명의 후보를 제시한 뒤 조사했고, 리얼미터 역시 14명의 후보를 제시했다. 두 조사에서 윤 총장은 모두 3위를 기록했다.

결국 윤 총장의 지지도는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로만 보면 야권 대선주자 후보군을 좁힐수록 상승하고 넓힐수록 하락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확실하게 윤 총장을 지지하는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범야권에 두 자릿수 지지를 받는 유력 후보가 없다 보니 여론조사 방식이 바뀔 때마다 순위가 급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미국도 맞히기 어려운 여론조사


이 때문에 정치학자와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정치 환경에 맞는 여론조사 설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여야 후보 중 누가 제일 나은지 각각 먼저 묻고, 여권 1위와 야권 1위를 놓고 가상대결을 붙이는 방식이 제일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1 대 1 가상대결 조사 역시 정확도를 담보하진 않는다. 최근 치러진 미국 대선은 여론조사업체들의 예상대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겼다. 다만 일부 경합주(州)의 경우 업체들의 예상대로 바이든의 ‘압승’은 아니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확실한 우세로 예측됐던 미시간주와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접전을 치렀고, 플로리다주는 업체들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다.

의회 선거 역시 민주당이 상하원 선거를 싹쓸이하는 ‘블루 웨이브’(민주당 상징색인 푸른색 물결)가 실현된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 보니 민주당은 하원에서 과반(218석)을 간신히 넘긴 219석에 그쳤고 상원은 패했다. 특히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 의원(메인주)의 경우 참패할 거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뒤엎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 관계자가 뉴욕타임스에 “명백하게 우리는 눈이 멍든 상태”라고 말할 정도다. 4년 전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스트벨트(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에서 선전하면서 여론조사업체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여론조사 모두 ‘표본과 응답률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여론조사기관들이 아무리 표본을 잘 수집한다 하더라도 전화조사의 응답률이 평균 5%밖에 되지 않는다. 여론조사기관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의 성향이 정확히 반영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역시 최근에는 ‘샤이 트럼프’가 많아진 데다 소득·학력 수준에 따라 백인 내부의 정치 성향도 극명하게 갈리면서 표본을 선정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응답률도 평균 6%에 불과하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전화조사의 응답률이 떨어지고 여론조사가 부정확해지는 건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윤 총장이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지금이 바로 돈과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표본을 제대로 갖춘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론조사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론조사의 ‘숫자’는 믿지 말고 ‘추세’만 믿자”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각기 다른 여론조사 업체들이 내놓는 숫자와 순위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여론의 흐름을 참고하자는 얘기다. 김형준 교수는 “윤 총장의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함의는 이낙연과 이재명의 2강 구도가 깨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여론조사 숫자만 가지고 평가하기보다는 동일한 업체가 발표하는 여론조사의 흐름과 트렌드에 집중하는 게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열 정치부 기자 ryu@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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