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쓸모[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6일 0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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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작가·취미원예가
정수진 작가·취미원예가
“서랍 속에 굴러다니다 불쑥 나타나는, 언제까지고 쉽게 버릴 수 없는 그게 만년필의 장점이지.”
―영화 ‘하나와 앨리스’ 중

‘가장 쓸모없을 것 같은 선물 사주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선물을 고를 때 쓸모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쓸모없는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는 우선 쓸모 있는 물건이 뭔지 살펴봐야 한다. 가장 쓸모 있는 물건은 아무래도 생필품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혹은 특별한 날을 기념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선물 같은 선물’을 찾는다. 적당한 가격과 비범한 느낌, 그리고 선물을 주는 의미들을 타협해 선물을 고른다.

‘하나와 앨리스’에는 앨리스가 따로 살고 있는 아버지와 오랜만에 재회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남의 자리에서 앨리스의 아버지는 앨리스에게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만년필을 주는데, 써도 되냐는 앨리스의 물음에 아버지는 “잉크를 바꾸는 게 귀찮아 점점 쓰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서랍 속에 굴러다니다 불쑥 나타나는, 언제까지고 쉽게 버릴 수 없는 그게 만년필의 장점이지”라고 말한다.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가족이란 사이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불쑥 기억을 남기는 사이다. 앨리스의 기억에 언제까지고 남고팠던 아버지의 마음이 우회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쓸모없는 선물 주고받기’ 놀이로 주고받는 선물은 역설적으로 가장 선물다운 선물이 되어버린다. 받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쓸모가 없고 하찮은 선물을 고르기 위해서는 적당한 선물보다 더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며, 이 과정을 거쳐야 겨우 선물의 대열에 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념하는 것 이상으로 기억에 남길 수 있을 만한 것. 선물을 고르는 일이 골치 아프고 복잡하지만 때때로 단순히 즐거운 고민이 되기도 하는 이유다.

정수진 작가·취미원예가
#내가 만난 名문장#선물#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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