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목격한 죽음[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64〉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상처가 때로는 실천적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가 마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은 소설 ‘최초의 인간’에 나오는 일화는 좋은 예이다.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그가 형이나 다른 겁쟁이 식구들보다 더 용감하다고 어르며 닭장에 가서 닭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했다. 용감하다는 칭찬까지 들었으니 소년은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러나 닭을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닭장은 겁에 질린 닭들이 꼬꼬댁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는 닭들만큼이나 겁에 질렸다. 닭장 바닥은 더러웠고 닭들은 푸드덕거리며 도망 다녔다. 그는 어렵게 한 마리를 잡아 창백해진 얼굴로 할머니에게 가져갔다. 그러자 할머니는 용감한 그에게만 특별히 닭 잡는 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거기 서 있어라.” 소년은 부엌 안쪽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모든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식칼로 닭의 목을 따 머리를 비틀고 연골부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무시무시한 경련이 닭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하얀 접시 위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년은 자신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닭의 흐릿해진 눈 위로 눈꺼풀이 덮였다. 한 생명의 끝이 그러했다.

자전적인 소설인지라 여기에 나오는 소년 자크 코르므리는 카뮈 자신이었다. 그것은 그가 실제로 경험한 것이었다. 죽어가는 닭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는 닭의 죽음과 관련하여 느꼈던 이름 모를 공포를 결코 잊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히 트라우마였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교훈적 사건이기도 했다. 카뮈가 사형제를 폐지하자는 장문의 명문 ‘단두대에 관한 의견’을 쓴 것은 그 사건과 무관하지 않았다. 1957년에 발표된 그 글은 프랑스가 사형제를 폐지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가 소년 시절에 겪은 악몽이 그를 깊게 만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따뜻한 눈으로 보게 만들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소년#목격#죽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