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초대[이준식의 한시 한 수]〈7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친구가 닭과 기장밥 마련해 놓고 시골집으로 나를 초대했네.

푸른 나무들 마을 주변에 몰려 있고 푸른 산은 성 밖으로 비껴 앉았다.

창문 열어 채마밭 마주한 채 술잔 들고 두런두런 농사 이야기./중양절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와 국화꽃 감상하리라.

(故人具계黍, 邀我至田家. 綠樹村邊合, 靑山郭外斜. 開軒面場圃, 把酒話桑麻. 待到重陽日, 還來就菊花.)

―‘친구의 농가에 들르다(過故人莊)’ 맹호연(孟浩然·689∼740)

닭과 기장밥을 마련해 놓은 친구의 소박한 초대, 접대를 받는 마음도 그에 걸맞게 소탈하고 편안하다. 주고받는 대화도 뽕나무며 삼나무 이야기뿐. 여름 농가에 누에치기와 베짜기보다 더 긴요하면서 일상적인 얘깃거리가 또 있겠는가. 전원시의 원조 도연명도 농가의 즐거움을 “서로 만나면 딴소리하지 않고 그저 뽕나무, 삼나무 크는 얘기만 나누지”로 표현한 바 있다. 9월 9일 중양절이 되면 다시 국화꽃 보러 오겠다는 마지막 구절은 친구와 그렇게 하기로 기약한 것인지 아니면 혼자 되뇌는 다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집 방문에 대한 흡족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쩍 내비쳤다.

정밀한 관찰이나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는 것도, 그렇다고 심오한 삶의 성찰이 내장된 것도 아닌 이 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 메모지에 담듯 담담하게 써내려간 데 있다. 시어든 이미지든 어느 것 하나 유별난 데 없이 수더분하고 밋밋하다. 그래서 이 시를 두고 옛 시인은 ‘너무 담백하여 도무지 시 같지 않은 시’라고도 했다.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으로 불리며 당대 산수전원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맹호연. 그 전원시를 높이 산 이백은 “젊은 나이에 벼슬을 마다하고 흰머리로 늙을 때까지 산림에 은둔하셨지/달에 취하고 자주 술에도 취했고 꽃에 홀려서는 임금도 섬기지 않으셨지”라 읊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닭#기장밥#초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