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권위주의 정권 시절 연상케 한 도심 차벽과 불심검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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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3일 개천절 서울 도심에서 예고됐던 일부 보수단체의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경찰버스 300여 대를 동원해 4km의 차벽을 세웠다. 병력 1만1000여 명을 투입해 일반 시민들의 광화문광장 출입까지 막았다. 광화문 부근을 지나는 지하철은 세우지 않고 통과시켰고 차량들은 무조건 세워서 창문을 내리게 하고 일일이 행선지를 물었다. 그럼에도 법원이 ‘차량 9대’ 범위에서 허용한 차량 시위는 법원이 요구한 9가지 이행조건을 준수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코로나19 방역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감염 확산의 우려가 있는 대규모 집회 개최는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명분을 등에 업고 정부가 도심 집회 봉쇄에 나섰겠지만 경찰의 대응은 과도했다. 경찰은 서울 외곽에 검문소 90곳을 설치해 차량들을 무차별 검문했고, 거리를 지나는 일반 시민들까지 일일이 불심검문을 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적 기본권이다. 정부 당국은 이런 헌법 정신을 존중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차량 안에서만 하겠다는 차량 시위마저 금지하려 했던 경찰의 발상과 과잉대응은 법적 근거도 희박하다. 대통령의 강경 대처 발언을 최대한 집행하는 데만 골몰한 경찰 지도부의 행태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권력의 망령을 되살리게 한다.

경찰은 9일 한글날 서울 도심 집회도 엄정 대응하겠다고 한다. 코로나 확산 방지라는 정부 당국의 대의에 그 누구도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명분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을 강압적으로 총동원하는 방식이라면 우리 국민이 피 흘리며 지켜온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특히 집회 봉쇄를 빌미로 일반 시민들까지 통행을 제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침을 과거로 되돌리는 일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를 정권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정권이라면 최소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선 한 차원 높은 성숙한 대응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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