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싶다, 대학야구의 반란[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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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고려대에 조성민(2013년 사망)이 있었다면 연세대엔 임선동이 있었다. 그리고 한양대에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있었다.

1990년대 초 동갑내기(1973년생) 대학야구 투수 ‘빅3’는 화려한 야구 인생을 살았다. 조성민은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의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임선동은 2000년 18승을 거두며 KBO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박찬호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뒤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124승)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모두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요즘 한국 야구는 ‘고졸 세상’이다.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야구는 드물게 학벌이 거꾸로 돌아가는 세계다. 가장 우대받는 건 ‘고졸’이다. 그다음이 2년제 대학이고, 4년제 대학은 마지막이다. 이 같은 서열은 프로에 가까운 순서대로 정해진 것이다.

21일 열린 2021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그랬다. 이날 지명된 100명의 신인 선수 가운데 고졸은 79명이나 됐다. 19명의 대졸 선수에서도 2년제 대학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강릉영동대에서는 졸업생을 포함해 5명이 지명을 받았다. 동강대도 2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고려대는 2명이었고, 성균관대와 중앙대는 1명씩이었다. 7명의 4학년 선수가 있는 연세대는 한 명도 지명받지 못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고교 졸업반 선수들은 프로와 대학을 두고 고민했다. 그렇지만 요즘 유망주는 열이면 열 프로 직행을 택한다. ‘시간=돈’이기에 선수들은 하루라도 빨리 프로에 들어가길 원한다. 프로 입단이 가능했는데도 대학을 택한 것은 NC 나성범(연세대 졸) 정도다. 사정이 이러니 대학에 가는 선수들은 시작도 전에 ‘실패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야구계에서는 ‘얼리 드래프트’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대학 2학년을 수료한 선수들을 드래프트 대상에 올리는 게 주 내용이다. 대학 감독들이 안건을 가결했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최근 관련 내용을 한국야구위원회(KBO)로 보냈다.

기대 효과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줄 수 있다. 현재는 고졸 때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 졸업까지 최소 4년을 기다려야 한다. 2년 후 다시 한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대학 입학 후 뒤늦게 실력이 부쩍 는 선수도 있다.

대학 야구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는 지명을 받지 못한 많은 선수가 프로팀 연습생으로 입단하거나 독립 리그 팀으로 간다. 대학으로 오는 선수가 모자라다 보니 대학 야구 수준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선수들에게도 대학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선수로서의 재능 부족을 느낀다면 야구 행정가나 구단 프런트, 스포츠 에이전시 등 다양한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어쩌면 조성민과 임선동의 맞대결 같은 드라마틱한 일은 다시 보기 힘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대학 야구가 활성화되면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반란’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요기 베라의 말처럼 야구도, 인생도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니까.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대학야구#얼리 드래프트#프로야구#kbo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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