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日 방역을 망친다[현장에서/김범석]

김범석 도쿄 특파원 입력 2020-08-10 03:00수정 2020-08-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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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일본 나가사키 피폭 75년을 기념하는 위령 행사에 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나가사키=AP 뉴시스
김범석 도쿄 특파원
일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심상치 않다. 4월 긴급사태 발령 후 잠시 잦아드는 듯하더니 7월 도쿄를 중심으로 한 확산세가 가팔라지자 “무서워서 바깥출입을 못 하겠다”는 일본인 지인이 적지 않다. 이들은 특히 “긴급사태 발령 때는 정부가 방역을 책임진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지금은 감염을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유명 인사도 잇따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방역 대책을 비판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柳井正·71)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8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한국 등 주변국은 물론이고 미국 등과 협력해 나가야 한다. 마스크와 방호복 등을 일본 내에서만 해결하려는 것은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와 같은 야마구치현 출신인 그의 정부 비판은 현지에서도 이례적으로 여겨진다. 우익 세력의 불매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소신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일본인조차 현 상황을 얼마나 우려하는지 알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처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서라도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대 교수는 아예 “한국에 머리를 숙여 코로나19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한 측근 역시 기자에게 “한국의 방역 체계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양국의 방역 협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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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9일 사설에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양국 외교 해법을 찾자고 주장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한국 여주인공과 북한 주민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친근감을 느꼈듯, 두 나라가 명분에 연연하지 말고 서로 냉정히 바라보며 관계 개선의 해법을 찾자는 취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총리의 측근 역시 기자가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을 묻자 입을 다물었다. 최근 일일 신규 확진자가 연일 1500명을 돌파했고, 국책 연구기관이 “6월 중순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퍼진 코로나바이러스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새 바이러스가 일본에서 창궐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도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의료 전문가가 코로나19 대책을 관장하는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경제재생상이 이를 주도하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세계 1, 2위 감염국인 미국과 브라질에서는 대통령이 전대미문의 보건위기 와중에도 정치적 이해관계만 중시하고 과학을 불신하는 행보로 일관해 화를 키웠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도 정치 때문이 아닐까. 손 내밀면 쉽게 이웃 나라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도 굳이 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한 아베 정권의 행보가 매우 아쉽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정치#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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