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쉽죠?” 화가, 밥 로스의 부활[광화문에서/신수정]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입력 2020-07-15 03:00수정 2020-07-15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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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지난 주말 TV를 보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채널을 고정했다. 폭탄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을 한 그는 캔버스에 무심한 듯 붓질을 하고 있었다. “참 쉽죠!”라는 말과 함께. 미국의 화가 밥 로스를 처음 본 건 1994년 EBS에서 방영된 ‘그림을 그립시다’에서였다. 1983년부터 1994년까지 11년간 미국 PBS에서 방영돼 9억3500만 가구가 시청한 인기 프로그램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The Joy of Painting)’을 EBS가 다시 틀어줬던 것이다. 김세한 성우의 나지막하면서도 편안한 더빙 목소리에 밥 로스가 너무나 쉽게 근사한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가족과 함께 봤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1995년 52세의 나이에 악성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서서히 잊혀졌다. 그를 세상에 다시 알린 건 유튜브였다. 2012년 팬들의 꾸준한 요청으로 ‘밥 로스’ 공식 유튜브 계정이 만들어졌다. 첫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3300만 건이 넘는 조회에 9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현재 구독자 수는 412만 명. 그는 다시 전 세계인의 그림 선생님이 되었다.


유튜브를 통해 부활한 그를 반가워한 건 20∼30년 전, 그를 TV에서 봤던 세대만이 아니다. TV가 아닌 유튜브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도 그의 매력에 푹 빠졌다.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 각종 디지털 기기 속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듬뿍 갖고 있는 밥 로스 영상을 보면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를 즐겨 보는 젊은 세대에 밥 로스는 더욱 유명하다.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캔버스 위를 가로지르는 나이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저절로 잠이 온다는 이들도 많다.


어렸을 때는 붓과 나이프로 쓱 대기만 해도 멋지게 그림을 완성하는 그의 손놀림에 감탄하면서 방송을 봤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서 그의 방송을 다시 보니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가 시청자들에게 들려준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냐는 시청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실수를 한 게 아닙니다. 단지 행복한 사고(accident)가 일어난 거죠.”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빨리 물감을 덧칠하는 ‘wet-on-wet’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는 실수를 해도 곧장 다른 붓질로 만회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참 쉽죠?”라며 우리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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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이어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토로하는 시청자를 위해 선보인 에피소드에서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회색만 인식할 수 있다는 시청자를 위해 흰색과 회색으로만 채워진 멋진 풍경화를 선보이며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데이비드 색스는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아날로그의 반격은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기술이 기가 막히게 좋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는 이제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우리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제품이나 서비스와 소통하기를 원한다”고 썼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봤던 밥 로스의 프로그램을 이젠 나의 아이와 함께 보면서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그 감성의 울림을 새삼 느낀다.

신수정 디지털뉴스팀 차장 crystal@donga.com

#화가#밥 로스#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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