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은 ‘밀실 안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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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지소미아 꽁꽁 감췄던 정의용 안보실
국민들은 최소한의 안보 알 권리 보장받아야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의외로 반전(反轉)이 있는 사람이다.

신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얘기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부분의 시간을 정보기관에서 보냈다.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에 입사해 워싱턴 등 서방 외교가에선 ‘spy chief’로 통하는 정보기관 수장(국가정보원장)까지 지냈다. 그런데 그는 정통 정보맨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무엇보다 그는 말을 잘한다. 달변이다. 소통을 즐긴다고 주변에 말할 정도다.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와 실제도 좀 다르다. 무표정하고 심지어 금욕적일 것 같은 인상인데 그는 알아주는 애주가다. 대북통이라 북한 사람들만 잘 알 것 같지만 오랜 정보기관 근무 덕에 미 중앙정보국(CIA) 인맥이 적지 않다. 두 살 아래 지나 해스펠 CIA 국장을 편하게 ‘지나’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가 국정원장에서 안보실장으로 옮기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외교가에 적지 않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임 정의용 안보실장과는 다른 스타일이어서 그럴 것이다. 더 정확히는 ‘정의용 안보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는 목소리가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정의용 전 실장이 이끈 국가안보실은 장막에 가려 있었다. 북핵 이슈는 물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협상, 일본의 무역 보복에 따른 한일관계 설정 등 한국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외교안보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논의하는지 밖에서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청와대 다른 부서에서도 안보실이 정확히 뭘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 서로 물어봤다고 한다.

‘밀실 안보 컨트롤타워’라고 해도 무방할 이런 업무 스타일은 “안보실은 밖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는 정의용 전 실장의 지론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안보실 업무 특성상 보안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요리해놓고 결과만 떡하니 발표하는 게 최선인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지난 시절 안보실은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런 식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운영은 안보 이슈에 대한 국민들의 합당한 알 권리를 제한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본다. 청와대보다 기밀이 적지 않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기회 될 때마다 언론 브리핑이나 콘퍼런스 등 다양한 형태로 대국민 접촉을 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나 지금 도널드 트럼프 때나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할 일 많은 백악관 NSC에서 왜 국민들에게 꾸준히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리겠나. 소통을 통해 자신들의 안보 구상을 수정·보완하고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다. 오바마 임기 8년간 외교 구상을 실무 총괄했던 벤 로즈 전 NSC 부보좌관의 공식 직함은 ‘전략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보좌관(Deputy National Security Advisor for Strategic Communications)’이었다. 수시로 백악관 인근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외교 정책 토론회를 갖고 대통령의 구상과 메시지를 보완하는 게 그의 업무 중 하나였다.

서훈 실장이 맨날 언론을 통해 대국민 접촉을 하라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 전 3차 북-미 정상회담 중재 의사를 밝힌 뒤 워싱턴과 평양에서 발신하는 메시지가 어지러운 수준이다. 싱가포르, 하노이에 이어 다시 한 번 비핵화 쇼만 하다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다시 국가안보실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금, ‘서훈 안보실’은 과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외교안보 컨트롤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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