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장 서는 여성 사외이사 마켓[오늘과 내일/하임숙]

하임숙 산업1부장 입력 2020-07-13 03:00수정 2020-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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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이사회 참가 8월부터 의무화, 능력을 증명해 시장이 더 커지길
하임숙 산업1부장
한 전문직 여성단체는 최근 서울의 한 대학에 자신들을 위한 강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강좌의 제목은 ‘여성 ××인 사외이사 전문과정’. 기업의 사외이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기업지배구조, 인수합병(M&A) 등 전략적 의사결정, 재무적 투자 의사결정 등의 지식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달 5일부터 이사회 구성에 관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여성 전문직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기업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사회에 여성 임원을 한 명 이상은 포함시키는 일종의 ‘여성 할당제’다. 사외이사의 단골손님인 교수뿐 아니라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각종 전문직군의 여성들이 ‘좋은 시장이 열렸다’며 준비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여성 사외이사 과정을 8월 말부터 열 예정이다.

이 법은 강제 규정이긴 하지만 안 지키는 기업에 처벌 규정은 없다. 유예기간도 2년 있다. 그러나 많은 대기업들이 이미 올해부터 이 법률안을 반영해 여성을 이사회 멤버에 넣기 시작했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와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기업의 전체 등기임원(이사회 멤버) 1107명 가운데 여성의 숫자는 53명(4.8%)으로 2019년(2.9%)의 2배 가까이로 늘었다. 법보다 강력한 ‘여론’이라는 처벌이 있는 데다 어차피 시행된다면 선제적으로 따르는 게 낫다고 본 기업들이 여성을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년엔 여성 이사회 멤버 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이사회는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큰 투자나 비용이 동반되는 주요 의사결정이 이 기구에서 내려진다. 기업 내부에선 주로 대표이사가 참여하고 나머지는 사외이사들이 채운다. 그러니 여성이 이사회에 진출한다는 건 대표이사인 여성들이 늘거나 사외이사들이 는다는 뜻이다. 내부에서 여성 임원을 키우지 않은 기업들로선 당장은 사외이사를 늘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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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들은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과거처럼 오너나 경영진과 친한 사람이 들어와서 회사가 원하는 결정에 손만 들어주는 건 원하지 않는다. 엘리엇 같은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시대에 ‘내부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원한다. 예를 들어 한 부품 관련 대기업은 그동안 거래했던 한국 기업의 사정이 나빠지자 중국 업체와 계약해 매출을 급격히 늘렸는데 사외이사들이 이 매출을 줄이자고 경영진에 건의했다. 중국 업체가 현금 결제를 하지 않고 1년 뒤 결제하는 외상 거래를 했기 때문에 회계상으론 매출이 늘었지만 현금 흐름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대기업은 외부 지원자를 받아 사외이사를 뽑았는데 유명 법률사무소가 지원자들의 전문지식을 평가해 점수를 내기까지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성 사외이사도 전문지식으로 기업의 경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오히려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여성 사외이사 시장에서 여성들은 능력을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아직까지 기업 경영진의 인식은 ‘법이 바뀌었으니 한 명은 넣어준다’는 데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만이 아니라 대표이사급 여성들이 많이 늘어야 한다는 점도 과제다. 현재 임원급의 세대까지는 뽑힐 때도 현저히 적은 숫자가 뽑혔고, 출산과 육아로 중간에 직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많았기에 임원 진출 여성들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30, 40대는 이를 뛰어넘을 조건을 갖췄다. 기회가 누구에게나 공평해도 된다는 점을 앞으로 증명할 일만 남았다.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

#여성#사외이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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