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웅’들의 진정한 바람[글로벌 이슈/이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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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홍콩공원 내에 자리한 ‘사스 추모 공원’.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환자 곁을 지키다 희생된 의료진 299명 가운데 8명의 흉상이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홍콩의 홍콩공원 내에 자리한 ‘사스 추모 공원’.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환자 곁을 지키다 희생된 의료진 299명 가운데 8명의 흉상이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설 국제부 차장
이설 국제부 차장
흉부외과 의사 청식힌, 간호사 웡캉타이….

홍콩의 홍콩공원 내에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추모 공원’이 있다. 2003년 홍콩을 덮친 사스 환자들을 돌보다 숨진 의료진을 기리는 곳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올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미국 시사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최근 “의료진을 존중하는 문화, 선한 공동체 의식 등 사스가 홍콩에 남긴 유산이 코로나19 시국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스 사태 당시 감염되거나 과로로 목숨을 잃은 홍콩 의료진은 299명에 달한다. 홍콩인들은 목숨을 내놓고 환자 곁을 지킨 이들을 ‘사스 영웅’이라 불렀다. 요즘은 ‘코로나 영웅’들이 각국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감염 공포, 열악한 환경, 부족한 수면 속에서 의술을 펼치는 이들에게 대중은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이탈리아의 발코니 열창, 영국의 박수 플래시몹, 프랑스의 플래카드 이벤트….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응원 물결은 각 대륙으로 번졌다. 3월 중순 이후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고리로 세계가 한마음으로 응원전을 폈다. 매주 같은 시간 하던 일을 멈추고 손뼉을 치는 영국의 ‘의료진을 위한 박수’가 대표적이다. 가디언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은 물론 미국, 캐나다에도 이 응원전이 전파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응원전을 두고 회의론이 제기됐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응원은 현실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당장 ‘멘털데믹(Mentaldemic)’ 관리가 시급하다.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의 죽음을 가까이에 두고 일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병동에서 겪는 환자의 죽음은 차원이 다른 상흔을 남긴다고 인도 의사 발디 씨는 BBC에서 토로했다.

“감염 위험 때문에 대부분 중증 환자는 격리된 채 치료를 받습니다. 자연히 환자의 마지막은 의료진이 지키게 되지요. 가족 없이 죽음을 맞는 환자의 상황이 상당한 심리적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인도 남부 에르나쿨람 의대 중환자실장 파타후덴 박사는 “보통 환자의 가족과 함께 치료에 대한 정서적 부담을 공유한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의 경우엔 그 짐을 의료진이 오롯이 져야 한다”며 “압박감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등을 겪는 현장 의료진이 적지 않다. 22일 미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코로나19 최전방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의료진 137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PTSD를 겪고 있었다. 20%는 우울 및 불안 증세를 보였다. 이런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연구팀은 최근 BBC에 “사스가 종식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에도 당시 현장에서 근무했던 의료진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보호장비 부족, 가족의 불이익, 사회적 편견도 불안의 주요 요인으로 파악됐다. 테이트 섀너펠트 미 스탠퍼드대 교수는 “특히 가족이 겪을지 모를 신체·정신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실제 멕시코에서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표백제, 뜨거운 커피를 붓는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 봉쇄 완화 조치를 속속 도입하고 있지만 의료진은 여전히 외로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노고를 격려하는 연대도 뜻깊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최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밤낮 없이 일하는 의료진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가 아닌 보상”이라며 “의료진에 대한 보상과 복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BBC는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지침을 잘 지키는 것이 의료진을 도와주는 길”이라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중장기적 심리적 보살핌과 보호장비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영웅, 전사, 천사란 말도 좋지만 균형에 어긋난 희생은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의료진을 위한 박수’를 처음 기획한 앤마리 플라스 씨도 이제 방향을 틀 생각이라고 최근 가디언에서 밝혔다.

“(비판 의견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9일을 끝으로 응원전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박수는 멈춰도 감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의료진을 지지할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
#코로나#코로나 영웅#의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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