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보는 미래사회]자동화로 빨라진 삶… 인간적 품격 위한 ‘사회적 합의’ 화두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3〉김도훈 교수 ‘일과 교육의 미래’

김도훈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아르스 프락시아 대표이사
김도훈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아르스 프락시아 대표이사
세상은 두려움의 속도만큼 빨리 변하진 않는다. 두려움 속에 지나온 길을 문득 되돌아보면, 과거와 저만치 멀어져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자동화를 통해 상당수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예측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릴 것이다. 없어져야 할 직업이라고 꼭 없어지지도, 생겨나야 할 역량이라고 꼭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의 ‘자동화사회’는 자동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각의 사회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의 지성과 의지, 이해관계가 자동화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중층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 행태와 집단 지성이 어떻게 발현할지 그 구체적인 모습부터 응시할 필요가 있다. 분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세상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킬 변화가 없어도, 일하는 속도는 두려움을 느낄 짬조차 지울 만큼 빨라지고 있다. 이미 당일 배송을 넘어 새벽 배송이 생겼다. 물류와 상품 주문의 예측 알고리즘이 더욱 발달하면 ‘로켓’보다 빠른 ‘광속’ 배송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사람은 쉼 없이 항상 대기해야 한다.

직장인들의 사무는 어떨까? 이미 20여 년 전 유행했던 용어인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현재의 업무 행태를 설명하는 데 더 걸맞아 보인다. 스마트폰과 각종 업무 애플리케이션(앱)의 발달로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유연화’돼 온 추세는 재택근무 경험과 함께 더욱 확산될 것이다.

그런 변화가 우리 삶에 의미하는 바를 ‘소멸’과 ‘집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미 한국 사람들이 평소 영위하는 행동반경은 극단적으로 짧거나 긴 여정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모든 것이 집중돼 가는 수도권 도시의 삶이 그러하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한 블록마다 있는 집 앞 편의점에 가기도 귀찮아한다. 모바일 앱을 활용한 배달 서비스가 너무나 다양하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 우후죽순으로 들어서 있는 편의점들이 대거 정리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이 사라진 황량한 빈자리에, 구매 정보 빅데이터 분석에 기초한 핵심 물품만을 집중적으로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무인 상점들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평소 대면 접촉으로 이루어지던 서비스의 경험이 변하면, 서비스 구매자의 생각과 태도도 변하게 된다. 대학이나 전문직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경험의 미래는 어떠할까? 메가트렌드와 바이러스 확산 등에 의해 인터넷 수업이 보편화되면서, 교육 수요자들은 자연스레 더 다양한 비교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 비교의 대상은 개별 대학은 물론이고 국경도 뛰어넘는다. 스타 강사와 교수는 글로벌한 주목을 받게 될 수도 있는 반면, 많은 교수자(敎授者)들이 존재 이유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원격 진료나 인공지능 진단 경험을 한 환자들 역시 자신이 받은 진료가 가장 적합한 것인가를 보다 집요하게 묻기 시작할 것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공학 의학 법률 등 전문지식이 쉽게 공유되고 값싼 서비스의 제공이 성행하면서, 극소수의 독점적인 영역을 제외한 전문직은 지금보다 더 피가 마르는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문적 소양보다 활용을 위한 지식(savoir faire)에 대한 갈급함이 커질수록, 구매자의 취향과 욕망은 중심부가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서비스로 집중되고, 주변부의 로컬은 급속한 소멸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물론 강력한 카르텔로 엮여 있는 이해 당사자들은 당분간 이런 외부 환경의 도전을 차단하거나 외면할 수도 있다. 시장을 독점하고 제도권 내 규제의 벽을 높여서 ‘공급자 보호주의’를 강화하려고 시도할 개연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근로자와 소비자들이 밖으로 시선을 돌려 더 나은 기회와 서비스를 모색하는 것을 로컬 단위의 카르텔이 가로막지는 못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력을 ‘자유롭되 너무 자유롭지 않게’ 관리할 필요성 역시 절실해진다. 대한민국과 같은 후기 자본주의의 반(半)중심부 경제 체제는 자유롭게 계약하고 해고할 수 있되 노동력의 역량과 가치가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선에서 틀 지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노동의 역량이 창의적인 발현을 통해 자유롭게 확장되려면 그 성과물인 브랜드 파워와 부가가치도 세계의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을 만큼 높아야 하는데, 현재까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산업은 엔터테인먼트 정도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관성이 형성한, 손이 빠르고 열심이고 디테일에 강한 노동 주체는 사고의 깊이와 자율성, 독창적인 세계관까지 더불어 함양할 여유가 협소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장기간 역량 축적보다는 당장의 과업을 수행하거나 발등에 떨어진 위기에 반응하기 위해, 낮은 의사결정 역량을 감수하면서 분주하게 ‘손발’들만 움직일 소지가 있다.

이러한 의사결정과 노동 환경에서 ‘가성비 좋은’ 노동력을 배출해 온 교육의 장은 바뀔 수 있을까? 변화의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가능할까?

오늘날 한국인들은 학교와 직장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창의적이 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현실에서는 글로벌 허브에서 통할 만큼 독보적으로 창의적이거나, 허브의 인맥과 연결되거나, 매우 운이 좋아야 개인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밥벌이’ 걱정에서 벗어날 것이다. 보다 깊은 사유와 역량의 축적을 도외시하는 노동 환경이 지속된다면, 업무와 지식 습득의 행태 역시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는 택배 기사처럼 ‘가속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성원들 대다수가 사회 시스템의 가속기 안에서 빛의 속도로 돌면서 ‘갈아 넣어지는’ 운명을 피할 길은, 글로벌 시장에서 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의 부가가치 혹은 상징자본을 창출할 수 있을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면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동화 기술은 학습자와 근로자에게 보다 다양한 학습과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경쟁하는 상대방도 같은 기술과 기법으로 학습과 생산시간을 단축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별적인 지위와 자원을 선점해 경쟁자의 사다리를 걷어찰 것이 아니라면, 고유한 부가가치를 사회적 차원에서 축적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인간의 어떤 잠재역량과 덕목이 차별적인 부가가치가 될 수 있고, 그런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교육과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이미 논의는 무성하다. 개인 차원에서 소통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예술적 감수성과 사회적 공감, 갈등 조정과 중재 능력, 다원적인 문제 해결 능력, 로컬 및 글로벌 사회에서의 협력 능력 등의 핵심 역량을 새로운 기술 플랫폼과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국내외 기관들의 연구 자료는 차고 넘친다.

이러한 역량을 함양하고 사회에서 발현하기 위해, 한국에서 ‘지위재’의 성격이 강했던 학부 중심의 입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교육이 교육 수요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다원적인 학습과 인성 함양의 경험을 시민들에게 제공하고, 체험과 커뮤니티 중심의 대안 교육 플랫폼을 통한 멀티 트랙(multi―track)의 평생학습 시스템도 점점 진화해 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래 핵심역량과 다원적인 평생교육 담론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인공지능과 차별성이 있는 능력,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습의 필요가 안정적인 직업과 풍요로운 삶을 담보해 준다는 보장이 있을까? 평범한 능력을 타고나 삶을 영위할 대부분 시민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문제 해결이 개인 수준에서 미래 직업을 예측하고 교육 방법을 강구하는 식이 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문득 멈추고 관성적으로 휩쓸리고 있는 노동 행태와 생산 양식부터 되돌아보며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의지의 방향성을 전제로 한다. 생산 주체들이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도록 업무의 방식과 구조부터 변화해야 보다 나은 일과 교육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자동화사회의 속도와 규칙을 조절해 인간으로서 품격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글로벌 시민들 간의 합의가 근본적인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인간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 기계와 달라서가 아니라, 인간들끼리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기로 합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연구가 단순한 미래기술 전망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컨센서스(consensus)의 구체적 방향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도훈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임교수·아르스 프락시아 대표이사
 
연세대 인문학부 학사와 사회학 석사를 거쳐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방법론 석사, 서식스대에서 박사를 마쳤다. 과학기술사회학, 방법론, 교육, 이노베이션 연구로 국내외 저널에 20여 편의 논문을 실었다. 데이터사이언스 기반 전략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를 창업했다.
#자동화#인간적 품격#사회적 합의#일과 교육의 미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