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선거, 우리의 일상[동아광장/김석호]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 2020-03-30 03:00수정 2020-03-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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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국민의 삶, 청와대는 무능… 총선 혈안 與野는 오랜 구태 반복
냉철한 투표만이 내일을 바꿀 것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날이 따뜻해지고 꽃이 피는 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3개월을 지나고 있다.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인의 희생, 마스크 5부제와 줄서기,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으로 혼란이 잦아들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망가져 있다. 점포에는 손님이 없고, 직장인은 무급 휴가라도 가면 회사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가 아파도 동네에 문 연 치과가 없어 집에서 버틴다.

그 와중에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두 달 전 신천지 31번 확진자가 나온 직후 참석한 토론회에서 학계 동료 중 한 분이 선거와 감염병이 만났을 때 사태가 악화하고 장기화할 것을 우려한 적이 있다. 현재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그 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와의 대결에서 승리 선언을 방해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의 탐욕스러운 계산이 사태 해결 과정에서 어려움을 가중하고 자꾸 길을 돌아가게 만든다.

전문가들의 권고대로 해외 입국자 관리를 현재 수준으로라도 했다면, 청와대가 코로나19와의 전투 승리로 인사, 주택, 교육, 노동, 에너지, 기업 정책에서의 실패와 식언을 은폐하려 하지 않았다면, 전권을 질병관리본부에 주고 감염 확산 방지 관점에서만 충실하게 대처했다면, 마스크 정책에 대한 섣부른 공언보다 시장에서의 가치가 아닌 공익적 가치로만 마스크를 다뤘다면, 여당이 승리를 자축하다가 확산이 진행되자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함으로 ‘정신 승리’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정치에 대한 없던 사랑도 싹틔우고 우리의 일상도 달라졌을 것이다. 야당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하는 이유는 그들은 이 정국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어 평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한 표의 가치를 찾아주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무시하더니 정치력 부족으로 법안이 통과되자 위성 정당을 통해 대놓고 도둑질을 천명한 미래통합당, 그토록 오래 염원했다는 개혁 입법조차 날림으로 하고 그 허점을 파고드는 도둑놈을 막기 위해 자신은 ‘격 다른 도둑놈’이 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이번에도 두 정당의 선거는 ‘우리’의 선거가 아닌 ‘그들’ 선거이다. 사실 통합당과 민주당이 지난 20여 년 동안 보인 행태는 서로 차이가 없다. 대북관계에서만 조금 다를 뿐, 한쪽은 시장경제를 최고의 가치라 하며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다른 한쪽은 재벌개혁을 역설하며 조금만 어려우면 삼성을 찾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현재 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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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 우리가 그들을 달리 보도록 연극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칭 보수는 시장경제를 침해하는 현 정권의 좌편향을 비판하지만, 정작 보수의 방향과 내용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는 내놓지 못한다. 자칭 진보는 모든 영역에서 그럴듯한 말로 정당성을 획득하고 명분을 선점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실력과 의지가 없다.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상대방이니 뭘 해도 된다고 착각하며 더 나쁜 짓도 주저하지 않는다. 광장의 촛불을 계승한다면서 탄핵당한 자들보다 조금 더 유능하고 조금 덜 부패했다고 자족한다. 그 정도 하라고 준 권력이 아니다.

나는 ‘슈가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역대 최고의 걸그룹 ‘씨야’를 소환해 그들의 건재를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사가 김이나가 고정 출연을 해서도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과거에 인기가 대단했던 노래를 매개로 세대 간 차이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감성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해 준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정치적 수사와 실체 없는 차이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우리 정치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치는 다 나쁘다는 말로 만연한 정치 혐오를 더 부추길 의도는 없다. 다만 이번에도 두 거대 정당의 연기에 취해 21대 국회도 무책임한 인사들이 차지하게 만든다면 그들은 여전히 ‘그들’로 남아있을 것이고 ‘우리’는 내일도 불편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난리가 진정된 후 우리는 더 가혹한 일상을 견뎌야 할 것이다.

두 거대 정당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그 둘 간 차이도 없다면, 당을 보고 투표하지는 말자. 냉철하게 따져보고 정당과 무관하게 되도록 젊고 새로운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정무적 판단보다 민심을 살피는 사람, 전문성에 기초해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 당론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보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에게 투표하자. 그들의 연극에 이번에는 조금만 덜 속는다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의 어떤 선택도 지금보다 더 나쁜 국회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총선#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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