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에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14〉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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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에서 ― 허만하(1932∼)

바다에 이르러
강은 이름을 잃어버린다.
강과 바다 사이에서
흐름은 잠시 머뭇거린다.

그때 강은 슬프게도 아름다운
연한 초록빛 물이 된다.

(중략)

두려워 말라, 흐름이여
너는 어머니 품에 돌아가리니
일곱 가지 슬픔의 어머니.

죽음을 매개로 한 조용한 전신(轉身)
강은 바다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자기를 완성한다.


마흔 줄을 넘으며 ‘인생은 사기’라는 진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열심히 공부하면 다 해결된다는 말. 이 말 때문에 공부 하나만 보고 달렸는데 공부로 해결되는 항목은 빈약했다. 착하게 살면 이긴다는 말. 이 말을 믿고 ‘허허허’로 살았더니 이기기도 전에 속앓이를 얻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사회가 전해준 충고들은 자꾸만 높은 허들을 넘도록 만든다. 그들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또 사랑했던 것인지, 참 아름다운 거짓말을 속삭였다. ‘아가, 이 고개만 넘어가면 쉴 수 있을 거야’라고.

순진이 어울리지 않는 이제는 충고를 스스로 찾아낼 때다. 누군가가 만든 충고가 아니라 나한테 딱 맞는 나의 충고 말이다. 찾는 일에는 묘수가 따로 없다. 쉽게는, 책을 읽으며 마음이 머무는 구절에 그저 머문다. 마음은 거짓을 속삭이지 않고 그냥 안다.

오늘 소개하는 시에 당신 마음이 머물 구절이 있으려나. 내 마음은 저 ‘강’ 앞에서 한동안 멈춰 있었다. 흘러 흘러 가는 강은 인생을 닮았다. 강은 뭐하러 흐르나. 1등 되기 위해 흐르는 강은 없다. 높은 고갯마루 넘기 위해 흐르는 강도 없다. 강은 바다에 닿기 위해 흐른다. 흐르는 일에 멈추는 일을 더해 결국 완성되려고 흐른다. 흐름으로서의 우리는 흐르는 것도 두려워하고, 흐르지 않게 되는 것도 두려워한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 결국 이르는 곳은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생을 멈추면 다 바다가 될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기만으로도 강의 흐름은 너무 짧다. 두려워만 하기에는 이 생이 너무 아깝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낙동강 하구에서#허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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