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화장실에도 시진핑 사상, 美-中 갈등 속 홍색교육 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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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베이징 중국중앙당교 르포

지난달 26일 중국의 핵심 간부 교육 기관인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당 간부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생태문명 사상 관련 수업을 듣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지난달 26일 중국의 핵심 간부 교육 기관인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당 간부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생태문명 사상 관련 수업을 듣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지난달 26일 베이징 서쪽 관광지 이허위안(頤和園)과 위안밍위안(圓明園) 사이의 중국중앙당교를 찾았다. 중앙당교는 중국 공산당 고위 간부를 양성하는 국립 단기 교육기관. 당교 교정에 우뚝 선 대형 마오쩌둥(毛澤東) 동상에는 ‘우리의 옛 교장’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다른 편에는 ‘총설계사’라는 표지가 붙은 대형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이 자리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린다.

당교 역사를 소개한 전시관 입구에는 덩샤오핑이 강조한 ‘실사구시(實事求是)’가 붉은 글씨로 쓰인 현판이 붙어 있다. 전시관을 둘러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모두 최고지도자에 오르기 전 중앙당교 교장을 지낸 사실을 발견했다.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 핵심 간부들은 이곳에서 ‘시진핑 사상’을 집중적으로 학습한 뒤 각지로 배출된다. 1일 공산당 창건 기념일 98주년을 전후해 중국 전역에서 ‘시진핑 사상 교육’ 열풍이 부는 지금, 중앙당교 내부를 취재할 기회를 얻었다.

○ “시진핑 사상으로 두뇌 무장”

이날 강의실에는 80여 명의 지방 당 간부가 시진핑 생태문명 사상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강사는 독일 일본 대만의 자연친화적 건축 설계 등을 소개하다 파워포인트(PPT)에 중국 농촌의 재래식 변기 사진을 띄웠다. 그는 “(시진핑) 총서기가 화장실 혁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중국 국가수반인 시 주석은 동시에 공산당의 수장인 총서기다.

“고상한 장면은 아니지만 안이 어떤지 한번 보세요. 가장 놀라운 게 뭡니까? 물이 나오는 수도관이 없다는 겁니다. 중국 북방은 물이 부족합니다. 모든 변기를 수세식으로 바꿀 필요가 없어요. 총서기가 농촌의 문명지식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우리가 왜 농촌 화장실에 가길 싫어합니까? 냄새가 지독해서죠. 이 변기를 보세요. 대소변을 분리하도록 작은 변화를 줬더니 냄새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농경지 거름으로 쓰기에도 매우 좋아졌습니다. 냄새 문제를 해결하고 생태 순환을 실현하면서 물도 많이 절약할 수 있습니다.”

강의의 모든 사례는 시진핑 사상으로 귀결됐다. “총서기의 생태문명 사상은 여러분에게 과거의 힘든 생활로 돌아가라는 게 아닙니다. 총서기는 ‘생태문명은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화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날 중앙당교 간부들이 설명한 당교 커리큘럼은 한마디로 요약됐다. “모든 교육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두뇌를 무장하는 것입니다.” 당교에 온 중견·고위 당 간부와 청년 간부들은 매일 마르크스주의 저작과 함께 시 주석의 주요 연설, 저서 등을 학습한다.

당교 측은 “지난해에만 당 간부 1만682명이 교육받았다”고 밝혔다. 관영 신화(新華)통신은 1일 중국의 공산당원이 9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인구 14억 명 중 약 6.5%에 달한다. 신화통신은 기업 학교 지역공동체 등에 파고든 당 기층조직이 461만 개라고 밝혔다. 당교를 거쳐 간 핵심 간부들은 중국 곳곳으로 돌아간 뒤 자신의 조직에서 왜 중국이 사회주의를 유지해야 하는지, 시 주석 중심의 단결이 왜 필요한지 선전하고 있을 것이다.

○ 일반 당원들도 직장서 사상 학습

중앙당교 교정에는 ‘우리의 옛 교장’이라는 표지가 붙은 대형 마오쩌둥 동상이 세워져 있다
중앙당교 교정에는 ‘우리의 옛 교장’이라는 표지가 붙은 대형 마오쩌둥 동상이 세워져 있다
중국은 전 사회적으로 시진핑 사상 교육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애당 애국’을 그 어느 때보다 강조한다. 1921년의 공산당 창당 정신으로 돌아가 시 주석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홍(紅)색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홍색은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뜻한다.

요즘 시 주석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부왕추신 라오지스밍(不忘初心牢記使命)’이다.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심하자’는 뜻. 지난달부터 중국 모든 정부 부처에서 주말을 가리지 않고 앞다퉈 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중앙(CC)TV와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 30여 곳의 기자 500여 명은 지난달부터 1930년대 중국군의 ‘고난의 행군’ 대장정 루트를 답사하고 있다.

중국 전역은 홍색으로 물드는 중이다. 기자가 지난달 28일 찾은 시 주석의 모교인 칭화(淸華)대에서는 ‘홍선(紅船)정신의 만리행(萬里行)’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홍선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창당선언을 한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의 한 배를 일컫는 말. 중앙당교 내에도 홍선을 재현해 놓았다.

공교롭게도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5월 시 주석은 대장정 출발지인 장시(江西)성 위두(于都)현에서 기념비에 헌화한 뒤 모여든 주민들에게 “현재는 새로운 (대)장정이다. 우리는 새롭게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외친 뒤 홍색 교육 열풍이 거세졌다. 당시 신화통신이 대장정 정신을 “모든 적을 압도하고 어떤 적에도 압도당하지 않는다. 모든 어려움을 정복하고 어떤 어려움에도 정복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홍색 교육 바람은 미중 갈등의 장기화,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등 시진핑 지도부가 처한 대내외 어려움과 무관하지 않다. 홍색 교육 바람에 일반 당원들도 직장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시진핑 사상을 학습해야 한다. 당원 사이에서는 “사상 학습 때문에 야근해야 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취재진이 중앙당교 관계자들에게 그런 사례를 전하자 “재미있는 대목이다. 내 주변에도 비슷한 의견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른 관계자는 “학습할 줄 모르는 간부는 업무 수준도 높이기 어렵다. 그 친구(당원)를 만나면 이 말을 전해주기 바란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 “가치관 다원화 다양화가 공산당에 충격”

전 당원의 시진핑 사상 교육 강화 배경에는 공산당 내부가 직면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시 주석은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전인 지난달 25일 정치국 학습 회의를 열어 “당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당의 선진성·순결성을 약화시키는 요소, 당의 근본 기초를 흔드는 위험이 곳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중앙당교 관계자에게 물었다.

―시 주석이 지적한 문제의 구체적인 사례를 말해 달라.

“1992년 당이 시장경제 도입을 제기한 뒤 시장교환 원칙이 당 정치생활에 들어오면서 시장경제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외부 세계의 도전이 시작됐다. 가치관의 다원화, 다양화가 공산당에 깊은 충격을 줬다. 정치 면에서 인민을 중심으로 할지 자본을 중심으로 할지, 사상 면에서 일원(화)과 다원(화) 사이의 갈등, 조직 면에서 민주집중제(사회주의 통치 방식)를 통일에 집중하느냐, 정책결정(권한)을 분산시키느냐의 도전, 기풍 면에서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그의 답변은 추상적이었지만 솔직한 면이 있었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한 사회주의라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라섰다. 하지만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다원화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최고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된 중국 사회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힌 셈이다.

이런 위기의식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답은 당 지도부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서구식 다원주의를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지난달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잠시 휴전에 합의했지만 미국의 견제가 여전한 가운데 미중 갈등의 장기화, 미국 등 서구와 중국 간 이데올로기 전쟁 조짐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당 내부를 강하게 단속하려는 움직임이다.

중국 지도부는 시 주석에게 권력을 집중해야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홍색 열풍에 중국 사회가 경직화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중앙당교에 붙은 실용을 중시하는 ‘실사구시’는 당원 간부부터 지도부까지 모두에게 필요한 격언이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시진핑#공산당#홍색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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