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명건]“권력은 다 똑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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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욕심에 본전도 못 건져… ‘늘공’은 결코 권력 편 아니다

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절반이 전부보다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는 바보들이다.”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권력자들을 이렇게 비판했다. 과도하고 방자한 힘을 주체하지 못해 ‘전부’ 차지하려다가 ‘절반’은커녕 본전도 못 건지는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본 것이다. 400여 년 뒤 철학자 플라톤은 마지막 저술 ‘법률’에서 이를 인용해 욕심이 권력자들을 파멸로 몰아간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법률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병에 걸렸다.” 지금으로부터 2300여 년 전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권력자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하면 지나친 걸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장관 후보자 7명 지명 철회 논란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환경공단 상임감사가 지난해 3월 표적 감사 때문이라며 사퇴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후임자 공모 서류 심사에서 청와대 내정 인사가 탈락했다. 이후 올 1월까지 ‘환경부 인사 담당 과장 청와대 호출→차관 청와대 호출→서류 심사 합격자 전원 탈락→과장 및 국장 좌천→탈락 내정 인사 환경부 관련 민간업체 대표 취업→환경공단 상임감사 재공모→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 인사 상임감사 임명’의 순으로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검찰 수사 결과다. 그 과정 일부에 당시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청와대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실이 개입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정 공무원을 쫓아내기 위한 표적 감사와 청와대의 공공기관 공모 개입은 법률 위반이다. 앞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사하게 입맛에 맞지 않는 공무원을 솎아낸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권력은 다 똑같다.”

요즘 환경부 등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한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김은경 전 장관 구속영장 기각에 청와대는 안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장 청구가 유죄는 아니듯 영장 기각이 무죄는 아니다. 검찰은 인사수석실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한 뒤 김 전 장관과 함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할 방침이다. 유무죄는 법원의 1, 2, 3심을 거쳐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그 재판이 청와대엔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이미 환경부 공무원 여러 명이 검찰에서 청와대 측 직권남용 혐의를 뒷받침하는 진술을 상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련 자료를 폐기하라는 지시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은 손쉽게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진술과 자료는 다 재판에서 공개돼 청와대를 옥죌 것이다.

이렇듯 직업 공무원, 이른바 ‘늘공’은 이제 결코 권력 편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학습 효과다. 늘공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하는 권력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살길을 찾기 위해 자료와 기록을 남긴다. 검찰에 불려 가면 속내를 탈탈 털어 내보인다. 권력의 법률 위반에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는 물증과 진술이다.

이 와중에 장관 후보자 7명이 모두 자격 시비에 휘말렸는데 늘공 출신(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과 학계 인사(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만 낙마했다. 늘공의 심사(心思)는 어떨까. 빗발치는 지명 철회 여론에도 여권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보란 듯이 버티는 모습에 ‘역시 권력은 다 똑같다’고 되뇌지 않을까.

플라톤은 저술 ‘법률’에 마치 현재 한국 정치를 들여다본 것처럼 썼다. “승자들은 나랏일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어 패자들에게 관직을 전혀 나누어 주지 않을 정도다. 누군가 예전에 있었던 나쁜 일을 기억하고서 관직을 장악해 반란을 일으킬까 봐 서로 경계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권력#공무원#장관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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