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77〉여우의 가르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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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과장하자면 동화는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것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그렇다. 자신의 별을 떠나 지구에 왔다가 큰 깨달음을 얻고 돌아가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의 핵심에 있는 왕자와 여우의 일화는 특히 그렇다.

어린 왕자가 지구의 어느 풀밭에 쓰러져 흐느끼고 있다. 그가 우는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장미꽃이 그가 사는 별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구에 와 보니 비슷하게 생긴 꽃들이 너무 많아서 배신감과 절망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나가던 낯선 여우가 그런 이유로 슬퍼하는 왕자를 보더니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라고 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다면서.

처음에는 왕자와 여우도 서로에게 다른 아이들이나 여우들과 비슷한 존재로 보이지만 서로를 알게 되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여우와 왕자는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결국에는 이별에 가슴 아파하는 사이가 된다. 서로와 보낸 시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여우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네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이야.” 그 경험을 통해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사는 장미꽃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별로 돌아간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이따금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기중심적인 어린 왕자를 닮았다. 그러니 지구에 올 때보다 지구를 떠날 때의 지혜로운 왕자를 닮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생텍쥐페리의 동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어린 왕자#동화#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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