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전쟁史]〈36〉불평이 만든 총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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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바꾼 물건 100개를 뽑는다면?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시작하면 오래된 저택의 이삿짐처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건에 한숨을 쉬고 주저앉을 것이다. 선정은 어렵지만 후보 대부분은 아마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외면을 받고 불평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후보로 틀림없이 거론될 물건이 바로 화약과 총이다. 모두 최초 발명자를 모른다. 화약은 역사가 오래돼서 모른다고 해도 겨우 15세기에 등장한 화승총(초기 소총)의 발명자를 모른다는 게 좀 의외다. 총은 영주나 기사들이 보기에 사회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불길한 요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최초의 총은 불완전하고 단점이 많았기 때문에 발명자가 숨겨졌을 가능성도 높다.

화승총은 군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뒤에도 여전히 불편하고 골치 아픈 병기였다. 장전하고 발사하는 데 60개가 넘는 순서와 동작이 필요했다. 발사 속도는 활의 10∼20%에 불과하고 습도만 높아도 사용할 수 없으며 무겁고 다루기 불편했고 총과 화약 모두 대단히 비쌌다.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았다. 총병은 갑옷을 입을 수 없어서 백병전에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를 보호할 별도의 창병이 필요했다. 차라리 그 비용과 수고로 궁수와 창병을 여러 명을 쓰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탄환이 불규칙해서 어떤 것은 총구에 억지로 때려 넣으면 발사되지 않고 총이 폭발한다. 총열을 구성하는 쇠도 너무 약하거나 품질이 일정하지 않다. 이것도 총을 폭발시킬 수 있다. 화약을 보송보송하게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화약통과 꽂을대 등 총에 달린 부수 장비가 많고 불편하다.

총기의 발달사는 거의 이런 불평을 기술과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불평의 소중함이자 언론 자유의 필요성이다. 듣기 싫거나 어리석은 투덜거림이라고 강제로 불평을 막아 버리면 불평은 불만이 되고, 나중에는 혐오가 된다. 혐오의 단계가 되면 사회는 단절되고 정체된다. 화승총과 현대 소총으로 무장한 나라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불평에 대한 이해와 처리법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화승총#소총#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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