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박민우]북한 노동자가 부른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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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북한 식당 ‘옥류관’에서 북한 여종업원이 손님들을 바라보며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을 부르고 있다.
아부다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12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북한 식당 ‘옥류관’에서 북한 여종업원이 손님들을 바라보며 ‘백두와 한나(한라)는 내 조국’을 부르고 있다. 아부다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해 솟는 백두산은 내 조국입니다. 제주도 한나(한라)산도 내 조국입니다. 백두와 한나가 서로 손을 잡으면 삼천리가 하나 되는 통일이어라.”

평창 겨울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달 11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서울 국립극장 무대에 올라 불렀던 이 노래를 기억한다.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이라는 곡으로 당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노래가 끝나자 ‘앙코르’를 세 번이나 외쳤다고 했다.

이 노래를 한반도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북한 냉면집 ‘옥류관’에서 다시 들었다. 노래를 부르던 북한 여종업원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즐비한 곳에서 유일한 ‘남조선 테이블’에 계속 눈을 맞췄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를 때 무대 위에 있던 여종업원이 꽃다발을 들고 우리에게 다가와 건넸다.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저릿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실향민이라던 동료는 어느새 눈시울이 불거졌다.

서울에서 평양냉면집을 수없이 다녀봤지만 진짜 북한 냉면집 문턱을 넘으려니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UAE에는 옥류관 3곳이 영업 중인데 모두 북한 외교부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묘한 긴장감 속에도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이라던 북한 여종업원의 진심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북조선과 남조선이 (남북 회담 등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UAE 옥류관의 북한 노동자들이 내년에도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 10월 UAE 정부가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신규 취업비자를 발급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존 북한 노동자의 비자와 북한 기업의 사업 허가를 갱신할 것인지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은 UAE를 포함해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 노동자 1만 명 이상을 파견해 외화벌이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강화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잇따라 송환돼 왔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현재 중동 지역에 남아 있는 북한 노동자 수는 수백 명에 불과하다.

북한에서 해외로 파견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북한 내 중산층이다. 북한 당국은 주체사상이 투철하고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2명 이상이어야 파견 노동자로 선발한다. 최근에는 북한 노동자들의 이탈 사례가 늘면서 평양 출신만 모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중동 지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12∼16시간. 휴가는 꿈도 꿀 수 없고 휴무는 월 1, 2일 정도다. 북한 노동자들은 파견된 국가의 근로기준법이나 상해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이들은 공동숙소에서 생활하며 북한 국가보위성 소속 감시원으로부터 철저한 감시를 받는다. 1인당 급여는 월 1000달러(약 107만 원) 수준이지만 절반을 충성자금 명목으로 북한에 송금하고 보위성 소속 감시원과 건설사 브로커 등의 몫까지 떼고 나면 고작 200달러 정도가 남는다. 가족에게 송금하긴커녕 본인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남의 나라에서 죽도록 일만 했던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까지 떼인 것으로 파악된다. 쿠웨이트와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들은 추가로 돈을 벌기 위해 중국 브로커 회사를 통해 부업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송환 압박이 커지면서 브로커 회사들은 의도적으로 8개월에서 1년 가까이 임금을 체불했고, 북한 노동자들은 울면서 중동을 떠났다.

북한 당국은 중동에 파견된 노동자들을 러시아로 이동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도 사정은 녹록지 않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달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한다. 많은 지역에서 이미 북한 노동자의 철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는 3만5000명에 달한다. 지난달 말에는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 도시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5명이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에 숙소 난방시설이 고장 나 양동이에 석탄불을 피워 놓고 자다가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세계 곳곳에서 외화벌이에 희생되는 북한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기회의 4월 봄바람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한라에서 백두까지 퍼져 나가길 기원한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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