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코끼리가 살아남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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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동아일보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과 관련해 경제 재정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때 복지공약은 예상보다 지출이 대폭 늘어날 것이 뻔한데 대선에서 밝힌 재원 조달 방안으로 공약을 전부 이행하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는 우려가 나왔다.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뜻한다. 이를 패러디한 농담도 수두룩하다. 예컨대 법학과는 코끼리의 대리인으로 닭을 선정해 닭을 냉장고에 넣는다면, 정치학과는 코끼리를 설득해 강아지와 통합하게 만든 다음 강아지를 집어넣는다는 식이다.

▷둔하고 온순한 이미지로 각인된 코끼리는 실제로 뛰어난 기억력과 강인한 생존능력을 갖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세이브 더 엘리펀트’란 기구를 만든 코끼리 전문가 이언 더글러스해밀턴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장치를 통해 케냐의 수컷 코끼리가 내전 중인 소말리아까지 은밀하게 다녀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모건’이라 이름 붙인 이 코끼리는 007 뺨치는 담력에 최첨단 전투기의 스텔스 성능을 갖춘 양 국경 넘어 약 200km의 행군을 완수했다. 목숨 건 도전의 이유는 짝짓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아프리카의 경우 무자비한 밀렵꾼 탓에 코끼리 수가 급감했다. 소말리아에선 정정이 불안한 1980, 90년대를 거치면서 아예 씨가 마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데 모건 덕분에 혹독한 내전과 밀렵꾼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에 소수의 코끼리가 살아있음을 알게 됐다. 전문가들은 모건은 낮이면 숲에 숨어 있다 밤에만 빠르게 이동하는 특수부대 전략을 쓴 것으로 분석한다.

▷육지 동물 중 덩치가 가장 큰 코끼리의 수명은 60∼70년. 대식가답게 하루 배설물만 50kg에 이르지만 코끼리 똥은 종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뇌 무게는 인간의 4배가 넘고, 어릴 때 마신 물웅덩이를 70년이 흘러도 찾아갈 만큼 기억력이 비상하다. 코끼리 무리의 생존은 우두머리의 기억력에 달렸다는데, 박 대통령은 3년 전 본보에 실린 조언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대선 공약#세이브 더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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