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야 정치권의 속 보이는 저가 담배 포퓰리즘

  • 동아일보

설 연휴 직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담뱃값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저가(低價) 담배 검토를 당 정책위원회에 지시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도 “담뱃값 인상이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추가 과세가 되고 있어 봉초담배(말아서 피우는 담배)에 한해 세금을 일부 감면할 필요가 있다”며 저가 담배 도입에 맞장구를 쳤다. 경로당 등 민생 현장 방문 때 나온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흡연자들의 불만을 수렴한 것이라지만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발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건강 증진’을 내걸고 올 1월부터 담배에 붙는 세금을 대폭 올렸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하는 가장 효과적인 금연정책이 담뱃값 인상”이라고 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담뱃값 인상은 세수(稅收) 목적이 아니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담뱃값을 올린 지 두 달도 안 돼 여야 정치권에서 나온 저가 담배 도입 발언은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렸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이러니 담뱃값 인상이 국민건강 증진용이라는 명분과 달리 ‘우회 증세’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2500원이던 담뱃값이 4500원으로 인상된 뒤 저소득층과 고령층 흡연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담뱃값이 올라 아예 끊은 사람도 늘었겠지만 쉽게 금연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저가 담배를 도입하려면 기존 담배보다 원가가 낮고 건강에 해로운 담뱃잎을 사용하거나, 특정 담배에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담배도 술처럼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나와 흡연자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 일본 유럽과 비교해도 한국의 담뱃값은 지나치게 싼 편이었다. 당국이 이 정도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하고 담뱃값을 인상한 것도 문제지만 ‘도로 담뱃값 인하’ 식으로 금연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고 조세정책을 왜곡한다면 더 큰 문제다.

설 연휴 즈음해 여야의 유력 정치인이 저가 담배론에 불을 붙인 데는 담뱃값 인상에 불만을 가진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포퓰리즘이 깔려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저가 담배 도입의 효과와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담뱃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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