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주행]학교장에게는 더 큰 비전을 만들게 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조주행 전 중화고 교장
조주행 전 중화고 교장
경기도교육감이 교장과 교감에게 수업을 맡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학교장의 직무나 일과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된다. 8년간의 나의 중고교 교장의 경험으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먼저 분명히 해둘 일은 지금도 엄연히 교장과 교감이 수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근하는 교사의 수업 결손을 막기 위해 교장 교감도 보강에 참여한다. 그리고 교장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훈화교육을 하고 각종 행사에서 인사말과 특강을 한다. 교장의 수업 부과가 기존의 범위를 넘지 않는 것이라면 구태여 추가적인 행정행위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정규 수업을 담당시키려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 규정된 교장의 고유업무 전념 의무를 침해하는 것이다. 관련법을 먼저 개정하는 것이 순서다. 법에 명시된 국가기관의 장인 학교장의 임무는 일반 행정기관의 장들과 다를 바 없다. 그중에서도 학교장의 특별 고유업무는 지역 실정과 학교 여건에 맞는 창의적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고 교사를 적절하게 배치·지도해 단위학교의 교육력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무상급식으로 식자재의 질과 가격을 따져 구입을 결재하고 식자재가 도착하면 아침 일찍 출근해 이상 유무 상태를 검수하는 일도 더해졌다.

변두리 지역 기피 학교의 교장에게는 몇 가지 업무가 추가된다. 상급학교 진학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를 안심시켜야 한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도서실 컴퓨터실 자율학습실을 연중무휴로 지원해 주고 재학생의 40%나 되는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학교장이 직접 학생들을 교외로 인솔해야 한다.

이 외에 학교 안팎을 돌며 화장실 문짝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식수대에 물은 잘 나오는지 챙기는 것도 교장 몫이다. 아침마다 정문에서 지각생들을 기다려 지도하고 주변 주택가를 돌며 흡연하는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들여야 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교원장학회를 만들어 십시일반으로 학생을 지원하자고 교직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학교장의 30년이 넘는 교육경험과 전문성을 학교교육에 반영하는 일도 중요하다. 학생들의 특성에 맞는 학습법 및 인성교육 자료를 제작·보급해 운영하면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학교장을 신뢰하게 돼 자연스럽게 협력으로 연결된다. 그런 분위기는 학생들의 진학진로 실적과 학교폭력 감소, 흡연 학생 감소 등에 반영된다. 학교장에게 몇 시간의 수업을 맡길 것이 아니라 교장실에 앉아 있을 틈도 없이 더 크고 더 웅장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주행 전 중화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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