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24>기도원의 아침 풍경

기도원의 아침 풍경
―이승하(1960∼ )

절벽에 세워진 집이다
먼동이 터 오는 시각
저 아래 저잣거리 아직 조용하기만 한데
이 방 저 마루 깨어 일어난 사람들이
목소리 높여 기도하기 시작한다
제각각의 기도 내용과 손짓

갓난아기를 먼 나라로 보내고 온 미혼모
돈 벌러 나갔다가 노모를 굶겨 죽인 남자
남편 몰래 바람피웠다 아기를 지운 여인
병명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왔다
온전한 육신은 죄 뒤틀려 있다
멀쩡한 정신은 죄 뒤집혀 있다
모두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

활처럼 휘어진 몸으로 기도하고 있다
격렬하게 경련하며 기도하고 있다
뛰어내릴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이곳
인생의 절벽 아득한 끄트머리
아침밥도 먹지 않고 울면서
모두들 울면서 기도하고 있다　　　　　　　
　　　　　　　　

시를 옮기다가 또 움찔, 손을 멈춘다. 주저주저, 마저 옮긴다. ‘모두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 처음 읽었을 때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제 무심히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된, 제주도, 팽목항, 선박, 침몰, 바다, 구명조끼…. 세월호 현장을 떠오르게 하는 말들은 참 기독교인이 품고 산다는 원죄의식이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모태 속에서부터 우리는 죄인이었나이다….

기도가 잘 닿게 하려는 염원으로 하늘 가까이 ‘절벽에 세워진 집이다’. ‘뛰어내릴 수도 없고/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인생의 절벽 아득한 끄트머리’에 선 사람들이 운명에 내몰리듯 찾아든 기도원. 신의 자비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들이 ‘먼동이 터 오는 시각’에 잔 둥 만 둥한 몸을 일으켜 울음에 찬 통성기도를 올리고 있다. ‘활처럼 휘어진 몸으로’ ‘격렬하게 경련하며’! 인간이 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이 풍경은 신이 보기에 좋을지 몰라도 사람의 눈에는 처절하다. 절벽 위에서 펼쳐지는 생의 바닥, 그 가장 낮은 자세에 화자는 무참히 전율한다. 해마다 대학입시 무렵이면 거르지 않고 신문을 장식하는, 제 아이 일신의 복을 간구하는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만큼만 처절한 게 신에게 인간이 바라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