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영욱]정치적 스턴트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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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쌀 시장 개방에 대해 정부와 논리적으로 싸우는 사람과 달걀이나 고춧가루를 공무원에게 던지는 사람 중 누가 언론에 등장할까?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산·현안 관련 당정 간담회장에 난입한 농민단체 회원들이 뉴스 인물이 되었다. 이들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인지, 언제부터 농민운동을 했는지는 대중의 관심 밖이다. 직업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스턴트맨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 쟁점을 부각하거나 제품을 알리려 할 때 조직이 의도적으로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을 ‘퍼블리시티 스턴트(publicity stunt)’라고 부른다. 언론과 시민의 주목을 받기 위한 이벤트를 말한다. 동물보호단체가 명동에서 모피 의류 반대를 위해 벌이는 누드 퍼포먼스나 신문 경제면에 등장하는 제품 발표회 등이 대표적인 퍼블리시티 스턴트이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 반대 입장을 밝히기 위해 한국 농민 130여 명이 홍콩 바다에 뛰어들어 회의장까지 1km 헤엄쳐가는 해상시위를 벌인 적도 있다. 2000년대 후반까지 반일 시위 현장에 자주 등장했던 활빈단이 사회단체로는 원조쯤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 등 100여 명이 6일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김밥과 피자를 먹으며 단식을 비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폭식 투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자 다음 카페 ‘너 땜에 졌어’ 운영자 조모 씨가 9일 개집과 개밥을 준비한 후 기자들에게 연락했다. 일베 회원들을 개에 비유하며 비상식적인 행동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설명과 함께. 운영자 조 씨는 6월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인천공항에서 엿을 던지는 퍼포먼스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사진기자들에게 퍼블리시티 스턴트는 중요한 취재거리이다. ‘일베’의 폭식투쟁과 ‘너 땜에’의 개 사료 퍼포먼스는 신문에는 거의 게재되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는 보도사진의 형식으로 많이 올라갔다.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행동하고 조직이 이뤄 낸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의 취재거리가 되도록 계산하는 것 역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슈에 천착해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기보다는 그림 만들기와 자신을 알리기에 집중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낡은 관행과 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하지만 어느새 정치의 문제로 환원되고 책임져야 할 공무원과 사회 구성원들은 면책을 받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그 빈틈을 정치적 스턴트맨들이 메우고 있다. 언론의 관심이 덜한 개인이나 집단이 선택하는 궁여지책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극단적인 방식에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우리 사회의 수준에 대한 탄식과 함께. 금도와 상식에 기초한 논쟁이 아쉽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쌀 시장 개방#퍼블리시티 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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