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이 돈봉투 돌리는 게 ‘송전탑 갈등’ 해결책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3일 03시 00분


경찰이 추석 연휴 때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경북 청도 할머니 6명에게 100만∼5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돌렸다. 봉투 겉면에는 ‘청도경찰서장 이현희’라고 적었고 총금액은 1600만 원이었다. 이 서장이 주민 위로금 명목으로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장에게 돈을 요구해 본인 이름으로 돈봉투를 돌렸다고 한다. 경찰서장이 한전에 돈을 요구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본인 명의로 할머니들에게 돈봉투를 돌린 발상에 기가 찬다. 언제부터 경찰의 직무 범위에 돈 전달이 들어 있었나.

한전은 청도군 삼평1리 송전탑 23호기 기초 공사만 한 상태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2년 가까이 공사를 중단했다. 올 7월 21일 새벽에야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친 공사 저지용 망루를 기습적으로 철거하고 공사를 재개했다. 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와 주민 20∼50여 명이 7월부터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이런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공사 방해 행위가 발생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공권력을 집행하는 것이 경찰의 할 일이다. 보상을 하더라도 원칙과 법 테두리 내에서 해야 하고, 보상 문제에 경찰이 나설 일이 아니다. 엄정하고 단호하게 공권력을 집행해야 할 경찰이 돈봉투를 돌렸으니 대형 국책사업을 할 때마다 뒷돈을 내놓으라고 떼쓰는 주민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 서장은 이달 2일에는 농성 과정에서 다친 할머니의 치료비 조로 한전에서 100만 원을 받아 전달한 사실도 밝혀졌다. 할머니가 치료할 돈이 없다고 하소연했고, 이 서장과 한전 지사장이 돈봉투 문제로 직위 해제됐다지만 여기에서 덮을 일이 아니다. 한전에서 어떤 용도로 마련한 돈인지, 경찰이 ‘배달 사고’ 없이 할머니들에게 모두 전달했는지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국가정책에 대한 정부의 갈등 해결방법이 기업에서 돈 뜯어 주민 매수하는 수준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사회갈등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직자들의 무능과 비리를 근절하지 못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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