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윤종빈]온건파에 귀 안기울이면 새정연의 앞날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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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파탄 여당 탓으로 돌리고 거리로 뛰쳐나온 제1야당
국회를 버리는 것은 국민을 버리는 것…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안돼
‘도덕적 우월 오만에 빠져 투쟁정치 집착땐 대선 必敗’ 동료 의원의 지적 새겨들어야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넉 달 반 동안 한국 정치는 마비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해 국가 대혁신을 기대했지만 남은 건 상처와 분열뿐이다. 정치권은 진정성 있는 복구 노력은 보이지 않고 변명만 쏟아내면서 네 탓 공방에만 빠져 있다. 이러한 가운데 궁지에 몰린 새정치민주연합은 아무런 비전과 전략적 대안 없이 국회를 버리고 거리에 나왔다.

새정치연합의 유일한 비전과 전략은 ‘강하고 선명한 야당’으로 보인다. 다수 국민의 공감 확보와 수권을 위한 비전과 전략보다는 당장 강하게 투쟁하는 것만을 최고선으로 본다. 반 토막 난 당에 대한 지지율은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여기에는 박영선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의 전략 부재가 큰 몫을 했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의원의 갑작스러운 단식과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에 묻혀 정치무대의 중앙에 서 있지만 궁지에 몰린 애처로운 모습이다. 생기가 사라진 얼굴에서 ‘국민 공감’을 얻기 위해 투쟁에서 벗어나려는 내적 의지와 장외 투쟁의 강박감이 묘하게 엇갈린 모습을 볼 수 있다. 전국의 당원을 모은 장외집회와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까지의 도보 행진 등의 이벤트를 통해 존재감을 찾고자 한다. 비대위원장 취임 일성이었던 ‘낡은 정치와의 결별’은 요원한 일이 된 것을 스스로 안타까워하면서 말이다.

박 위원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내 온건중도파인 ‘15인 의회주의자’의 주장에 동참해야 한다. 세월호특별법이 극적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낮아 별다른 출구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당의 사활이 걸린 중대 사안인데 15인 의회주의자들이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음 총선의 공천 불이익조차 감수한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만큼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들은 국회를 버리고 거리에 나가는 것을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반란을 주도한 황주홍 의원이 자신의 일지에서 고백한 대로, 새정치연합이 산업화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민주화’ 세력의 우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 일부를 부정해 투쟁의 정치를 유발하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인식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황 의원의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그래야만 박 위원장도 살아남고 새정치연합도 수권정당, 대안정당이 될 수 있다.

19대 국회 후반기 들어 새정치연합의 스텝은 제대로 꼬였다. 5월 2일 이후 4개월 동안 한 건의 법안도 처리 못했는데 국회를 버린 것은 무능국회에 대한 비난을 독차지하게 된 잘못된 선택이다. 그런데도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소속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단독 방탄 국회를 기습적으로 열었다. 일하기 위해 열었다던 방탄 국회는 본회의 한 번 개최하지 못했고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는 청문회조차 열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그러면서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이 증인 채택을 거부하고 가짜 민생법안을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책임 전가에 몰두했다. 130석을 가진 야당이 낡은 기득권인 불체포 특권에 기대면서 국회 파탄의 책임은 남을 탓하는 몰상식한 모습이다.

지난 넉 달간 1000억 원에 달하는 국민 혈세를 낭비했지만 법안 처리는 ‘0’건이라는 언론의 추산은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 분리 국감을 대비해 많은 보좌진이 여름부터 국감을 성실히 준비해왔고 일상적인 정책 연구 활동과 지역구 봉사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정서는 전혀 다르다. 국회를 버리는 것은 국민을 버리는 것이고 지금이라도 자발적인 세비 반납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능한 국회의 과도한 특권인 국회의원 겸직과 출판기념회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극한 대립의 정치를 종식시키지 않고는 국회의 정상화도 국가대혁신도 이룰 수 없다. 정치권이 국회를 볼모로 투쟁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6·4지방선거에서 왜 대승하지 못했는지, 7·30 재·보선에서 왜 대패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두 차례 선거 이후 대통령과 여당의 겸손함이 사라졌다는 비판에 앞서 왜 민심이 새정치연합을 떠났는지 깊이 고뇌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은 국회 포기가 새정치인지 답해야 한다. 박 위원장은 지금과 같은 낡은 투쟁의 정치로는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투쟁정치의 종식이라는 당내 온건파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새정치연합의 앞날은 기약할 수 없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정치연합#세월호 참사#온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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