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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김종인 前 새누리 국민행복위원장

입력 2014-06-23 03:00업데이트 2014-06-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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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저에 살며 슈퍼마켓서 장보는 메르켈… 리더십 비결은 경청”
3개월간 독일 체류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위원장. 이승만 정권 때인 자유당 시절부터 한국 정치를 체험하고 지켜봐 온 그는 유럽 경제와 역사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독일의 성공 비결과 한국 정치에 던지는 시사점을 설명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위원장(74)이 3개월간 독일 체류를 마치고 귀국했다는 소식에 안부인사 겸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훔볼트 재단 초청으로 독일 6대 싱크 탱크 중 하나인 에센 RWI (Rheinisch-Westfalisches Institut fur Wirtschaftsforschung)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독일 내 지식인 정치인들을 두루 만났다고 한다. 통일 이후,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탄탄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독일의 성공비결을 찾으려 인생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연구에 몰두했다고 한다.

당초 인터뷰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듣는 독일이야기는 세월호 이후 국가개조가 논의되는 마당에 의미 있는 시사점이 있었다. 인터뷰는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어렵사리 이뤄졌다. 사무실을 다시 찾은 건 22일이었다.

―직접 가서 본 독일 분위기는 어땠나.

“사회가 상당히 변했다는 걸 느꼈다. 국민들이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국민 82%가 현 상황에 만족한다고 하더라. 그럴 만도 한 것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에서 정부 부채가 줄어든 유일한 나라 아닌가. 올해 성장률도 2%가량 된다고 한다. 거리에 노인들이 많이 보였는데 다들 행복해 보였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주말 되면 여행 다니고 이런 게 진짜 복지사회구나 느껴졌다. 결국 한 나라의 발전이라는 것은 적당히 무슨 조치를 취한다고 되는 건 아니고 조금 비난을 받더라도 자신들의 특성을 살리면서 가는 거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독일이 비난을 받았다는 뜻인가.

“독일과 일본은 2차 대전 패전국이면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나라들로 주목받았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모델이 더 주목을 받았다. 독일은 1990년 갑작스러운 통일로 휘청거리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독일 모델은 끝났고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금은 어떤가. 일본이 1993년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독일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비결은 뭐라고 보나.

“독일인들 스스로 말하듯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 질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독일인들도 자신들의 시스템이 과연 옳은 건지 회의한 적이 있는데 역시 옳았다고 자평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냐’고 묻는데 아니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독일이 성공한 것은 경제 자체의 효율과 사회 각 분야의 질서가 서로 맞물려 통제와 감시 시스템이 가장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근로자 같은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탈락을 해도 또 다른 제도를 통해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나 체제에 대한 불만이 적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부가 개입하는 분야라고 하면?

“공정한 거래확립, 세금 노동 사회안전망 이런 거다. 시장은 내버려두면 약자는 죽어버리고 비사회적으로 가게 되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막고 사회적으로 조화시키느냐 이게 소셜(social·사회적)이란 말에 포함된다. 자본주의체제는 기본적으로 탐욕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탐욕에는 끝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란 것도 1999년 클린턴 정부가 금융 규제를 다 풀어 버리는 바람에 시장을 통제하지 못한 데서 온 거 아닌가.”

그는 “무엇보다 독일의 시장경제가 안정화된 데에는 사법부, 학계, 언론 역할이 컸다”는 말도 했다.

“독일 경제학자 뢰프케가 ‘나라가 잘 되려면 법관 기자 대학교수가 제 기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면 무조건 승복한다. 언론의 감시기능도 엄청나다. 독일인들 스스로 사회 곳곳을 파헤치는 언론의 탐사보도 노력이 민주적인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최근 총리 후보로 유력했던 국방장관이 표절에 걸려 정치적으로 매장됐다. 우리로 치면 7, 8년 가까이 교육부 장관 하던 사람도 표절 사실이 나오자 즉시 물러났다. 대통령도 두 사람이나 임기 중에 물러났다. 한 사람은 사소한 말실수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 되기 이전에 금융기관 친구를 통해 싼 이자로 대출받은 게 보도됐다. 낙마한 사람들에 대해 국민들이 애석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잘못이 있으면 물러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정말 존경받는 지도자인가.

“국민 신뢰가 대단했다. 지금 59세인데 이런 상태로 가면 총리를 한 번 더 하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까지 보였다.”

―메르켈 리더십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그는 엄청나게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이다. 최종 판단능력이 탁월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많은 사람들 의견을 듣는다. 독일 친구 중에 터키 출신 언론인이 있었는데 ‘메르켈을 세 번 만났다’고 하면서 굉장히 겸손한 사람이라고 전하더라. 총리가 터키 전문가를 찾다가 내 친구를 찾았다면서 자신이 동독에서 35년 살다온 사람이라 잘 모르니 상세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세 번이나 단독면담을 청했다는 거다. 최근 의사결정에서 매우 인상적인 건 원자력 발전소 폐기 정책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일이 이 정책을 관철시켰는데 오죽하면 ‘원전 폐기하려면 메르켈에게 물어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메르켈은 환경부 장관 4년을 하면서 환경운동가들 이야기를 오랫동안 다 듣고 있었고 후쿠시마 사태가 나자 바로 결심을 해버렸다. 이후 대체 에너지 개발 정책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북해의 풍력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남쪽 지방까지 끌어오는 과정에서 고압선이 지나가는 지역 내 반대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그 어려운 문제도 최근 합의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메르켈은 어떤 정책을 내놓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의견을 듣고 방향이 서면 국민들을 오랜 시간 설득한다.”

김 전 위원장은 “지금 독일 사회의 성공은 개방성에서 나온다고 본다”면서 “현재 총리와 대통령이 모두 동독 출신인데 우리로 치면 통일 후 북한 출신이 대통령도 하고 총리도 하는 셈”이라고 했다.

―메르켈 리더십을 흔히 ‘무티(엄마)’ 리더십이라고도 하던데….

“실제로 독일 국민들은 메르켈을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관저에 살지 않고 사저에서 남편하고 산다. 슈퍼마켓에서 스스럼없이 장도 보는 모습이 공개되는데 이걸 보는 국민들이 친근하게 생각한다. 사실 메르켈 집권 후 독일은 뭐가 잘못되어 가는 게 없다. 축구까지 잘한다(웃음). 총리 머릿속이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에 복잡하다. 또 유럽연합(EU) 집행부를 새로 뽑고 있어 굉장히 바쁜 시기인데도 일부러 축구 경기에 가서 선수들과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는다. 이런 게 독일 국민들을 흐뭇하게 하고 호감을 주는 것 같다.”

그는 “총리 보좌 그룹 중에 현자(賢者)들의 모임이란 게 있다”면서 “내가 있던 연구소 소장이 그 모임 의장인데 메르켈은 참석자들마다 제각각 다른 의견들을 모두 들은 뒤 ‘국민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라고 말한다고 한다. 정치라는 건 그런 것”이라고 했다.

―무조건 국민 뜻을 따른다면 포퓰리즘 아닌가.

“포퓰리즘이 아니라 그게 현실정치의 속성이다. 이 글로벌한 시대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점은 지금이 지식정보사회라는 거다. 국민들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정보가 무제한으로 유통된다. 교육수준도 굉장히 높아졌고 국민 대다수가 비판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 국민들을 상대로 과장하거나 뭔가를 연출하려 한다거나 통제하려 한다면 먹히지 않는다. 늘 이야기하지만 선거를 했으면 표심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내친 김에 국내 정치 문제로 질문을 삼았다. 그는 새누리당 정강정책을 만들고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에서인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즉답을 내놓는 것을 꺼렸다.

“이번 6·4지방선거는 누가 이긴 건가”라고 묻자 독일을 언급하며 국내 역대 선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원칙과 신뢰 강조한 朴대통령 경제민주화 약속 믿었지만 선거 끝나고 사라져▼

“독일 정치인들은 선거가 끝나면 승패 분석을 철저히 한다. 집권 세력이 되면 자기네들이 어떻게 해서 집권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한다. 우리 역대 선거도 찬찬히 뜯어보면 민심의 뜻과 이후 정국의 향배를 알 수 있다. 단적으로 1958년, 1971년, 1978년, 1985년 선거를 보면 서울 표심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58년 서울서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이 한 석 빼고 전멸했다. 겁이 나니까 다음 대선에서 부정선거 기획을 한 거다. 그게 4·19로 연결됐다. 71년 선거 때도 서울에서 한 석 빼고 다 전멸했는데 그 결과가 유신이었다. 78년 선거 때에도 서울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전국적으로는 1.1%포인트 차로 졌다. 그런데도 표심을 읽지 못하다 결국 79년 일이 벌어졌다. 85년에는 생긴 지 2주일밖에 안 된 야당(신한민주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전멸했다. 결국 87년 민주항쟁이 나온 거 아닌가. 민주사회에서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집권을 할 수가 없다.”

―이번 6·4선거도 엄중한 시그널인가.

“나는 그렇게 본다. 여야가 영호남에서 이긴 것은 원래 지역표이고 서울과 충청권 표심이 야로 돌아섰다는 게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관피아 척결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문제를 발생시킨 사람들한테 해결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그렇다고 다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결국 정치시스템 자체가 변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지금 세월호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세상이 뒤집어진 것 같지만 사실 역대 대통령 모두 당선이 되면 구름 위로 올라간다. 황홀경을 느끼며 1, 2년을 헛되이 보내기 십상인데 이번 일이 구름을 빨리 걷게 해 상황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동안의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법이 중요하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말을 끊었다가 “내가 경제 민주화를 주창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재벌을 해체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질서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다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근원적인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우리 재계(財界)는 너무 힘이 세니까 내부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자고 했던 거다. 이런 방식으로 가다가는 관(官) 주도와 정경유착으로 오랜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모델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떻든, 일본은 왜 지금 이 모양이고 독일은 승승장구하는지 그걸 알아보고 싶어 독일에도 갔던 거다.”

―총리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내가 새누리당 정강정책을 새로 쓴 사람이고 거기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가 들어간 거 아닌가.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그걸 내걸어 다수당이 됐고 대통령이 됐다. 평소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온 대통령이 그걸 꼭 지키리라 믿었다. 하지만 선거 끝나고 경제 민주화는 사라졌다. (이 정부에) 마음 떠난 지 오래다.”

―문창극 총리 후보 문제로 시끄럽다. 총리의 역할은 뭔가.

“우리 같은 대통령제하에서는 한마디로 역할이 거의 없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회에 가서 답변하는 것 외에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역사를 보면 총리제도라는 게 우습게 도입이 됐다. 내각책임제를 하려다 갑자기 대통령제로 바뀌었는데 어정쩡하게 총리 자리는 그대로 둔 거다. 이승만 대통령은 말년에 총리를 임명조차 안 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에 내가 어느 인터뷰에서 총리의 자격조건을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보다 잘나서도, 지식이 많아서도 안 되고 잘생겨서도 안 된다’(웃음)는 거다.”

―총리 인선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말라는 건가.

“상징적인 의미만 있기 때문에 누가 되든 대세에 지장이 없다. 책임총리 운운하는데 헌법에 그런 조항이 없는데 어떻게 책임을 지나.”

―문 총리 후보는 사퇴해야 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거듭 말하지만 지식정보사회라고 말만 하지 말고 거기에 따라서 행동을 해야 한다. 글로벌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하는지는 본인이 잘 알 것 아닌가.”

―새누리당을 떠난 뒤 대통령은 만났나.

“내가 3월 1일에 독일에 왔는데 국빈자격으로 대통령이 방독했던 3월 26일 나는 독일 외교부 초청으로 독일 대통령 주최 오찬장에서 뵈었다. 사람들이 많아 그냥 인사 정도만 나누었다. 그렇게 말고는 만난 적은 없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전화는 한 적 없나.

“없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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