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민심 톡톡]모든 게 얼어붙었다, 먹고살기 너무 힘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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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 모두 망할 판… 좌판 장사도 안돼
무능한 정부도, 흠집만 잡는 야당도 화나지만
남 탓 멈추고 나로부터 시작해야할 때 아닐까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세월호 참사 꼭 한 달이 됐습니다. 아직도 20여 명의 실종자가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발 꺼내만 달라”고 외치는 유족들의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의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는 커졌습니다. 한국사회는 지난 한 달 비탄과 분노 말고 변한 게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들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블랙홀이 되어버린 세월호로 전부 빨려 들어간 한국사회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합니다. 며칠 전 한 미국 언론인이 말한 “왜 한국사회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지도자가 없느냐”는 질타가 잔잔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잊지 않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제 할 일을 하는 게 도리라는 목소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1년보다 길었던 ‘세월호 한 달’. 아픈 민심을 조심스레 들여다봤습니다. 》
“돈 쓰는 게 죄스럽다”

―수학여행이나 관공서 기업 연수 예약의 85% 정도가 취소됐다. 위약금도 못 받고 있다. 15억∼16억 원 정도 손해를 입은 것 같다. 거의 망한 수준이다. 6월 이후 상황이 좋아지길 기대할 뿐이다.(40·여행업)

―지역 축제가 취소돼 방문객이 예년의 24만 명에서 3만 명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13일간 입장료 수입만 18억 원에, 부가적 경제효과가 379억 원으로 평가됐다. 올해는 평가 자체도 못하고 있다.(지자체 공무원)

―가정의 달 5월은 행사가 많아 꽃 주문이 늘었었는데, 올해는 허탕이다. 공공기관과 큰 단체, 개인기업 가릴 것 없이 행사가 모두 취소돼 꽃 주문 자체가 없다. 매출액이 지난해의 4분의 1 이하로 줄었다.(56·꽃집 운영)

―야간 회식이 줄어서 그런지 장거리 손님이 없다. 하루에 10만 원 벌기도 힘들다. 택시요금 인상으로 사납금도 올랐는데, 손님은 손님대로 줄어 한숨만 나온다.(50대 택시기사)

―좌판 장사도 힘들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만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원래 안 좋았지만 이번 일로 좀 더 타격이 있는 것 같다.(73·여·좌판 상인)

―돈 쓰기도 죄스럽더라. 화장품 사는 것도 죄책감이 들었다. 주변 엄마들도 비슷하다. 내수가 얼어붙었다고 하는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30대·주부)

―5월 행사들이 죄다 연기되면서 일부 업체로부터 계약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하지만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본다. 어떤 식으로라도 물꼬가 트여 회사가 제대로 돌아갔으면 좋겠다.(33·이벤트업체 직원)

―목 뒤가 뻐근해 스포츠마사지 가게에 쿠폰을 끊어 다녔었다. 하지만 이번 참사 이후 죄책감이 들었다. 누군 생사를 가르는 현장에 있었는데…. 이젠 사치를 버리고 가족에 신경을 쓸 것이다.(38·유통업)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매출이 줄었다가 최근 들어 캠핑이나 식품 위주로 다시 회복되고 있다. 가족 행사가 많아진 때문으로 분석된다. 떠들썩한 이벤트는 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자연스럽게 예전 분위기를 되찾는 것 같아 다행이다.(대형마트 직원)
“잊지는 말되 일상으로 돌아가자”

―요즘 소신 발언이 정말 어렵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싶지만 맞아 죽을까봐 못한다. 잊지는 말되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유족들도 마음을 추슬러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 함께 대비책을 마련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경제가 살아야 먹고살 것 아닌가.(35·여·세무사)

―공무원들도 마음이 불편하다. 어떤 부서는 사실상 반 마비 상태다. 모두 손을 놓고 있다. 이런 마음 상태로 관피아 개혁이나 국가개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41·중앙부처 공무원)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일이 온종일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습은 정부에 맡기고 국민들은 빨리 희망으로 전환해야 한다.(40대·회사원)

―한 달 뒤면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된다. 예년 같으면 벌써 축제 분위기일 텐데, 월드컵 공식 후원사들은 마케팅도 못하고 냉가슴을 앓고 있다. 대기업도 이런데 규모가 작은 기업은 오죽하겠는가. 지방경제가 무너지기 직전이라 하지 않나.(43·대기업 직원)

―수업 분위기도 침체됐다. 공부하면 뭐 하나 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대학 입시설명회마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당장 고3들 입시지도에 지장이 있다. 애도 기간은 충분히 가졌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50·고교 교사)

―TV를 일부러 안 본다.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보면서 내 정신세계가 너무 황폐해지는 기분이다. 모든 국민이 정신적인 충격을 매일 받아야 하나. 내 아이도 고2다. 계속 추모 분위기로 가는 건 정말 괴롭다.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43·여·에어로빅 강사)
“아직까지는 애도기간이 더 필요하다”

―안산 지역 장례식장 등에서 심리상담 봉사를 하고 있다. 많은 유가족이 ‘아직 때가 안 됐다’ ‘착한 우리 아이가 죽었는데 무슨 염치로 상담을 받느냐’며 심리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족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들과 아픔과 슬픔을 더 함께해야 한다.(40대·여·심리상담사)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안정되겠지만 아직은 그러기엔 이른 것 같다. 최소한 바다 밑에 있는 아이들 수색이라도 끝내야 하지 않겠나. 지금도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44·여·주부)

―연기된 거래업체와의 행사들을 다음 달 초 재개하기로 했다.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는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종자를 모두 찾을 때까지는 우리 모두 죄인이다.(38·여·중소기업 부사장)

―엄마들 홈페이지에는 ‘이번에야말로 빨리빨리 잊어버리는’ 속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압도적이다. 이번 일을 쉽게 잊는다면 수사나 처벌, 안전법규 마련이 다 안 될 것 같다. 경제 회복도 중요하지만 계속 애도하며 지켜봐야 한다.(34·여·주부)

―대통령과 관료들이 “소비가 위축되고 있으니 돈을 풀겠다”고 말하는 데 정말 실망했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경제가 위축됐더라도 공개적으로 ‘돈’을 거론해선 안 된다. 이번 사태도 돈 때문에 일어난 것 아닌가. 유가족을 더 위로해야 한다.(31·회사원)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쟁도 겪었고 어려움을 이겨 나가는 유전자가 강하다. 이번 일은 모두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차분하고 상식적이다. 이제는 추모를 이어갈 다양한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24·대학생)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음은 진도에 있다”

―국민들은 이번 참사 내내 무기력했던 정부와 정치권에 분노를 느꼈다. 많은 의혹만 남긴 채 잊혀져서는 안 된다. 원인과 책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30대·영어 강사)

―살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일상으로는 돌아가겠지만 누가 책임지는지, 제대로 해결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내 몸은 서울에 있지만, 정신은 여전히 진도에 있다. 아직까지는 잊을 수 없다.(35·여·공기업 근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 비난하고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전사고가 근절될까.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추궁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이번 일을 잊지 않으려는 자세가 중요하다.(50·자영업)

―통수권자가 확실히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확실하게 내놓고,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후에는 이번 사태의 교훈을 잊지 말고, 모두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39·여·은행원)

―어머니 생신에 맞춰 노인용 보행기를 사드릴 생각이다. 17만 원이라는데, 그동안 걷는 게 불편하다고 할 때 왜 귀를 기울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많이 했다. 부모님의 소중함을, 이번 사태를 통해 느꼈다.(54·여·교수)
“6·4지방선거 때 민심 보여주겠다”

―이번 사고로 숨진 학생들과 희생자들을 향한 깊은 애도의 마음은 평생을 표현해도 부족하지만, 국가의 중요한 선거일이 다가온다. 슬픔은 잠시 뒤로하고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는 데 주력할 때다.(30대·의료기사)

―이번 일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여당 사람들은 망언을 너무 많이 했고, 대통령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야당도 잘한 게 없는데 무조건 대통령과 정부 비난한다고 표 얻지 못할 것이다. 모두 선거 때 심판받을 것이다.(34·사무직)

―비극을 이용해 ‘정부 물러나라’ ‘대통령 하야하라’ 같은 구호가 나오는 걸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는 잘못한 게 없고, 너만 잘못했다’ 식으로 비난의 대상만 찾는 것 같다. 그런 정치인을 심판해야 한다.(43·자영업)

―원래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사건이 터지면서 많이 실망하게 됐다. 아직 누구를 뽑을 것인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여당과 정부가 혼쭐이 났으면 좋겠다.(22·여·대학생)

―정부 탓이라고 흠집 잡는 야당에 화가 난다.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누적된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야당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선동하고 있다. 선거에 악용해서는 안 된다.(23·여·대학생)

―후보들이 각종 안전 공약들을 남발할 것 같다.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가져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전 관련 정책을 내놓았으면 좋겠다.(25·여·회사원)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당과 야당 모두에 실망했다. 원래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았는데, 더 불신이 커졌다. 정치인들이 이번 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아 불쾌하다.(24·대학생)

―배 인양에만 20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들었다. 여름도 가까워 오는데 정말 수색을 끝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분노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분명하게 묻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할 몫이다.(39·의사)

오피니언팀 종합·박승민 인턴기자(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세월호#민심#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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