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 대통령, 남재준 국정원장 문책하고 국정원 개혁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혐의 사건에 대해 어제 “검찰은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가정보원은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국정원이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일탈과 무능은 심각하다.

어제 검찰은 국정원 실무 라인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휴대전화 도청 사건 수사와 댓글 사건 수사에 이어 세 번째 압수수색이다. 국가 정보기관이 이렇게 번번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기(國紀)가 흔들리는 상황에 남재준 국정원장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지난달 중국이 국정원 측 제출 문서 3건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했을 때 남 원장은 즉각 감찰 기능을 발동해 스스로 진상 조사를 했어야 옳았다. 남 원장이 이미 진상을 파악하고 있다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검찰 조사를 기다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상을 모르는 상태로 국정원장의 계급장을 단 채 검찰 조사를 받는 것 역시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남 원장은 작년 6월 국정원이 2급 기밀문서로 분류해 보관해온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일반 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하면서 “야당의 회의록 조작·왜곡 의혹 제기에 맞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은 국정원의 명예 정도가 아니라 존재 이유나 다름없는 대공(對共) 수사·정보·공작 역량이 수준 이하라는 사실이 드러난 엄중한 상황이다.

국회 국정원개혁특위는 여야 간 견해차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활동 시한인 2월을 넘겼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 등 개혁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일 태세다. 그러나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국정원을 무력화하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현 국정원의 무능은 야당이 집권했던 과거 10년 동안 취약해진 대공 역량과도 관련이 있다. 국정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남 원장은 몸을 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문제는 이미 드러났다. 대공 역량의 강화를 위해서도 수뇌부 쇄신은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 수사 결과 남 원장 등 수뇌부가 증거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야당의 남 원장 해임 공세에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을 문책하는 것으로 국정원 개혁의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남재준#국정원#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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