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공천제 폐지 논쟁이 뜨겁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 중이지만 여야 간의 셈법이 달라 도무지 마무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안철수 의원의 3월 창당 공식 선언으로 지방선거 판세 예측이 어려워져 더욱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은 작년 7월 전 당원투표로 폐지를 결정해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우위를 점한 민주당은 공천이 없더라도 현역 프리미엄을 기대해 다소 느긋한 모습이다. 서울의 경우 시장은 물론 시 의원의 75%, 구청장의 76%를 장악하고 있다. 또한 ‘당 대 당’ 구도를 피해 안철수 신당의 효과를 차단하고 낮은 당 지지율을 인물 효과로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특별·광역시 기초의회 폐지와 오픈프라이머리를 제안하며 공천제 폐지 약속의 파기에 따른 후폭풍에 대비하고 있다. 작년 재·보궐 선거에서 일부 무공천을 실천하며 민주당을 압박하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무공천일 경우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난립해 지지가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는 2006년 졸속 도입 이후, 다양한 세미나 공청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었다. 폐지론자들은 공천 비리와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존치론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정당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의 문제와 책임정당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실 공천제 폐지가 만변통치약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정당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아래로부터의 투명한 공천, 당 권한의 분산이 없다면 어떠한 제도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는 새누리당은 재작년 총선에서 선거구 246곳 중 14곳에서만 실질적인 경선을 실시했다. 대선을 앞둔 개혁 경쟁의 결과로는 매우 초라한 성적표였기에 상향식 공천을 말처럼 실시할지 전혀 믿을 수 없다.
미국의 경험은 정당공천제보다 정당 민주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미국은 연방제의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9만여 개의 지방 정부가 각기 다른 전통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51명 규모의 뉴욕시의회는 공천을 허용하고 15명의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공천제가 없다. 물론 50개 주 의회는 정당공천이 있다. 미국은 상향식 공천과 분권화를 실천해 유권자의 정치참여가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이러한 미국의 정당정치에서 정당공천제는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공천제 폐지 논쟁은 정치권의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정치권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우리 정치의 모든 것을 해결할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논쟁이 이번 지방선거의 사활적 이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대선 주자의 공약 이행이라는 책임성의 문제이고 정치개혁의 큰 틀에서 보면 일부에 불과하다.
폐지론자들이 주장하는 공천 비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공천 헌금을 주고받은 정치인을 아예 정치에서 퇴출시키는 강력한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양당 독점 구도의 타파가 필요하다. 이는 상향식 공천과 함께 정치권의 커다란 기득권 포기가 전제되어야 하기에 매우 어려운 과제다.
거대 양당의 독점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군소정당과 정치 신인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한 취지로 기초의회 2∼4인 중선거구제가 정당공천제와 함께 도입되었지만 16개 시도의회를 장악한 양당이 4인 선거구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2인 선거구는 629곳이었지만 4인 선거구는 24곳에 불과했다. 7대 특별·광역시에는 4인 선거구가 아예 없었다. 정치 신인이 4등 할 기회조차 원천봉쇄한 것이다. 지방의원의 겸직 문제 또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13년 4월 현재 광역의원 가운데 약 40%가 겸직하고 있다. 자치단체로부터 5000만 원 안팎의 연봉을 받으면서 본인의 직업을 유지하기 때문에 의정활동은 부실해지고 직위를 이용한 각종 이권개입과 비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거공약을 못 지킬 경우 후보와 당이 함께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정당공천제가 이번 선거의 블랙홀이 되어 다른 개혁 이슈를 잠식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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