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순애]공기업 부실의 책임과 처방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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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 밀어붙인 정부, 표장사 위해 이용한 국회, 값싸게 서비스 즐긴 국민
빚더미 허덕이는 공기업에 누구도 책임 자유롭지 못해
자구노력-구조조정은 물론 경쟁체제도 적극 도입해야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공기업 부채 급증과 재정건전화에 대한 우려가 많다. 최근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같은 말을 들어왔기에 ‘파부침선(破釜沈船)’의 각오로 공공기관을 정상화하겠다는 부총리의 발언에도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부의 엄포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개혁의 칼자루를 쥔 정부와 개혁의 대상인 공기업이 ‘공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공기업을 국정과제 수행의 도구로 활용했다. 조국근대화와 경제적 자립을 기치로 내세웠던 박정희 정부부터 활기찬 시장경제와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공기업의 역할과 규모는 계속 커졌다. 그러니 공기업이 급증하는 부채의 원인을 자기 잘못이 아니라 정부사업 탓으로 돌릴 만도 하다.

공기업도 한때 ‘모범 기업’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1960년대 최고의 직장이었던 석탄공사는 변화하는 에너지정책에 대응하지 못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던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지난 정권 무분별한 해외투자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토지주택공사, 도로공사, 수자원공사의 주요 사업은 이미 공급포화 상태로 기존 시설의 유지보수만 하는 수준으로 사업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특히 140조 원에 달하는 토지주택공사의 부채는 역대 정부의 주택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국전력공사, 철도공사 등 다른 공기업도 오십보백보다. 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산업용 농업용 전력, 만성적인 적자노선 운영, 사업성 없는 해외투자 등으로 고질에 걸려 자발적 경영효율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기업의 이런 태생적 구조적 한계가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했다.

결국 무리한 국책사업을 추진했던 정부도,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지역사업에 앞장섰던 국회도, 원가에 못 미치는 서비스 요금으로 풍요를 즐겼던 국민까지 우리 중 누구도 공기업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핑계로 부채 증가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해당 공기업의 기관장과 비상임이사를 포함한 임원진, 회계감사기관, 경영평가단의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경영에 관한 핵심 의사결정자로서, 재정상태 및 경영실적을 평가하는 외부 통제장치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무위험이 높은 해외사업 확장이나 채권 발행 등 부채원인행위를 결정할 때 이사회에서는 어떤 논의를 했는지, 부채가 급증한 공공기관의 회계감사기관은 재무제표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경영평가단은 부채가 증가한 기관의 경영성과와 주요 사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각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11월 기획재정부가 실시한 ‘국민이 원하는 공공기관’ 여론조사 결과, 공공기관 개혁 과제 1순위는 ‘부채대책 마련’이었고, 정보공개 등을 통한 부채 원인 파악이 가장 중요한 관리방안으로 제시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채를 성질별로 구분해 원인 분석정보를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책임경영을 위해 당연하고도 필요한 조치다.

공공부문에서 어떤 종류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각국이 처한 경제수준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유가공 식품조차 시장에서 생산하기 어려웠던 시절 농어촌개발공사는 산하 20여 개의 자회사를 통해 국민들의 먹거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는 지금 중화학공업은 물론 항공, 통신, 금융서비스까지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은 환경변화에 맞춰 사업을 축소하기보다는 사업다각화라는 이름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정원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늘렸다.

두 번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버티던 디트로이트가 파산한 것이 올여름이다. 파산의 원인은 자동차 산업의 쇠퇴라는 외부요인도 크지만 방만한 재정집행이라는 디트로이트 내부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먼 나라 일이 아니다. 공공기관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시대적 소명을 다한 공기업은 퇴출시켜야 하며, 기술혁신과 생산원가 절감, 그리고 서비스 개선이 필요한 공기업은 경쟁체제로 바꿔야 한다. 공기업을 살리는 처방전은 그것밖에 없다.

※이 칼럼은 내년 2월에 출간될 필자의 공저인 ‘공기업의 개혁: 쟁점과 사례’에서 일부 인용했습니다.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psoon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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