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소나기 세무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한 사장이 “회계장부를 확실히 해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무슨 생뚱맞은 얘기냐’고 반문하자 이 사장은 “곧 세무조사 폭풍이 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돈 냄새에 밝은 기업인은 “원칙대로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말을 바로 세무조사와 연결한 것이다. 지금 국세청 움직임을 보면 그의 말이 들어맞았다.

▷요즘 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은 영일이 없다. 문제가 있어 보이는 기업엔 어김없이 칼을 들이댄다. 회장 사퇴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포스코에 예고 없이 들이닥쳐 회계장부를 가져가면서 ‘정기 세무조사’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K대 인맥으로 득을 봤다는 얘기가 나돈 CJ는 지주회사에 이어 CJ E&M도 조사 대상에 추가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돈 그룹인 효성은 비자금과 역외(域外) 탈세가 걸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국세청에선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재계에선 “청와대와 국세청이 이심전심(以心傳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원성을 듣지만 마냥 탓할 일은 아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세무조사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데 곳간을 채워 넣는 것은 국세청의 일이다. 기초연금과 4대 중증(重症)질환처럼 돈이 많이 드는 대선 공약을 지키려면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걷든지 국채를 찍어 나랏빚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복지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아무도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징세를 ‘거위 털 뽑기’에 비유해 월급쟁이들을 화나게 만드는 바람에 재계로 불똥이 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득세를 인상하기 어려우니 기업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업들은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잔뜩 움츠려 있다. 국세청이 마구잡이로 세무조사의 칼을 휘두르면 애꿎은 기업이 죽을 수도 있다. 정말 조심스럽게 털을 뽑아야 할 거위는 기업이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세무조사#국세청#세금#복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