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채동욱의 허물, 권력의 편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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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사회부장
이기홍 사회부장
검찰총장 혼외아들 파문이 터지자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야당과 좌파 논객들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인 검찰총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보수진영에서는 ‘야당의 앞잡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적의 적’은 내편이라는 진영 논리인데, 실은 양측 모두 큰 착각을 한 것이다.

야권은 채동욱 전 총장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하자는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을 외압을 물리친 정치적 결단으로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취임하면서부터 일선 수사상황을 보고조차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일선의 의견을 100% 존중하겠다는 철학과 원칙에 따라 수사팀의 손을 들어준 것뿐이다.

사실 댓글 수사에서 드러난 혐의는 선거법을 적용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필자 개인의견으로는 적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선거법은 거창한 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설렁탕 한 그릇만 잘못 대접해도 선거법에 걸린다. 만약 수사팀이 선거법을 적용 안 했다면 야당에서 재정신청이 제기됐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선거법 위반 행위가 선거 결과를 부정할 그런 범죄는 아니다. 예컨대 2004년 탄핵 파동을 불러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이 총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국정원 직원 70명이 6개월간 올린 국내 정치 관련 댓글은 73개였다. 물론 그런 댓글은 한 건이라도 있어서는 안 될, 반드시 처벌해야 할 일이지만 법 위반의 경중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총장이 전적으로 신뢰해준 수사팀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사팀의 발표내용은 조직적 대선 개입과 은폐공작이 이뤄졌다고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일부 내용이 짜깁기됐다. 경찰 검찰 감사원 언론 등 뭔가 남의 잘못을 찾아내 성과를 올려야 하는 직업인은 찾아낸 허물을 더 선명하고 거창한 얘기가 되게 만들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게 되는데, 수사팀이 그 함정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채 총장은 퇴임식에서 검찰권 독립을 지켜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이든 법원이든 언론이든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내부 구성원의 이념적 치우침, 의욕 과잉, 주관성을 통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소홀했다.

하지만 그런 허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총장으로서 6개월간 이룬 성과와 검찰수장으로서의 덕목에 비하면 경미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여권 내에선 총장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는 8월 이전부터 혼외아들 의혹을 입수해 내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이 동원됐다면 반드시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언론에 흘려 총장 낙마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정권 내에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진 세력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통제하기 힘든 검찰총장에 대한 여권 실세 인사들의 거부감은 제3자의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어리석어 보인다. 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해롭게 할 선무당 칼잡이가 아니었다. 야당에 끈을 대는 정치지향적인 인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순치된 총장을 갈구하는 이들은 참지를 못했다.

그 과정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업무처리 방식은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 많았다. 그런 게 모두 만약 황 장관의 단독 판단이었다면 그의 정무감각, 리더십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만약 보이지 않는 손의 입김에 의한 것이었다면, 21세기 한국사회의 수준과는 걸맞지 않은 구시대적 패러다임에 젖은 인물들이 여권 핵심부에 남아 있다는 방증이어서 우려스럽다.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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