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51>가을의 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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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
―폴 베를렌(1844∼1896)

가을날
비올롱의 가락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
가슴 메여
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
눈물 흘리네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낙엽 같아라


아침저녁으로 날이 차가워졌다. 저 멀리서 착실히 다가오는 겨울의 발소리 벌써 들리는 듯하다. 이제 이만하면 됐으니까 더이상 추워지지 않았으면 나는 좋겠다. 추위에 약한 사람들은 아마도 마음의 옷이 얇은 사람이다. 마음이 거의 맨살인 사람. 그들에게 가을은 겨울의 전령이다. 이 가련한 겨울의 난민들은 가을의 냄새나 소리나 빛깔이나, 작은 기척 하나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게, 가을의 대표적 정서인 우수(憂愁)가 빚어진다. 폴 베를렌은 우수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의 노래’는 너무나 유명한 가을 시다. 그래서 좀 망설여졌지만 마흔 살이 안 된 독자들은 시를 거의 읽지 않고 사니까 혹시 모를 수도 있을 듯해 소개한다. 번역시로도 느낄 수 있게 음악성이 도드라지는 시다. 운율이 쉽고 곱다. 내용도 금방 공감이 간다. 폴 베를렌의 시들을 감상적이라고 폄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감상(感傷)이 뭐 어떻단 말인가? ‘하찮은 사물이나 상황에서도 쉽게 슬픔을 느끼는 마음’이 감상이다. 마음에 전혀 각질이 없기에 가능한 재능이다. ‘하찮은’ ‘쉬운’이라니, ‘값없다’는 뜻일 테다. 두께도 무게도 없다는. 그러나 마음은 양은냄비가 아니어라. 쉽게 끓는다고 쉽게 식을까. 또 아교처럼 끈끈한 시도 있지만 끓는 순간의 향기와 증기처럼, 은 세공품에 아른거리는 햇빛처럼, 덧없어 아름다운 시도 있는 것이다. 시인은 노래한다, 가을의 모든 것이 마음의 가장 여린 부분을 건드려 슬프고 아프다고.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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