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순애]공공부문의 부패, 트위드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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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근혜정부는 국민 행복을 위해 신뢰받는 정부와 창조경제를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사건 사고는 정부가 표방하는 희망의 새 시대와는 거리가 있다. 단적으로 최근 홍콩의 한 컨설팅업체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은 아시아 선진국 중 가장 나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개발 국가들과 순위를 다투는 실정이라고 한다. 원전 납품 비리와 고위공무원의 금품 수수, 4대강 건설업체 담합 등 대형 부패사건이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부패 문제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늘 현재진행형 화두다. 공공부문이 포함되면 그 범위와 정도는 더 심각해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1800년대 중반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과 뉴욕 주 상원의원 등을 지낸 윌리엄 트위드의 사례다.

트위드의 끝 모를 부패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빈번하게 인용될 만큼 흥미로운 사례다. 그의 자서전을 집필한 케네스 애커먼은 ‘트위드의 부패고리(Tweed Ring)’를 사법부와 의회, 재무부까지 이용했던 견고한 권력조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73년 204개의 죄목으로 법정에 서기 전까지 트위드는 최소 1억 달러 이상을 부정 축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로 단가 부풀리기, 차명계좌, 부실 보증, 최상가 낙찰, 허위 하자보수, 뇌물수수 등의 수법을 이용했다.

19세기 후반 뉴욕은 산업화와 더불어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구가 급증하자 도심 정비와 도시기반 시설의 확충이 필요했다. 트위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개인적 치부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브루클린 다리 건설, 센트럴파크 개발, 도시 인프라 구축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4년 동안 뉴욕 시의 채무는 300% 이상 늘어났는데, 이런 채무의 대부분은 공사 관련 부실채권 발행과 연관이 있다. 특히 트위드의 친위 조직으로 구성된 센트럴파크위원회는 공원 내 시설 허가권, 주변지역 개발이익 보상금, 예산 전횡 등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뉴욕 시는 법원 건물 신축에 25만 달러를 배정했지만 공기(工期)가 10년 이상 지연되면서 완공 시에는 총 1300만 달러 이상이 들어갔고 그중 약 900만 달러가 트위드의 사조직으로 흘러들어갔다. 조달 부문에서도 트위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당시 뉴욕법원이 탁자 3개와 의자 40개, 가구와 카펫 등에 지출한 총 비용은 미국 우정서비스 1년 예산보다 많았고 2년간 미 연방 외교에 지출한 비용의 3배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라고 한다.

자선사업으로 위장해 공금을 유용하거나 횡령했고 이렇게 마련한 검은돈은 인사 청탁과 로비에 사용했다. 우호적인 기사에는 사례금을 지불하는 등 언론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대중적 지지기반 구축에도 성공했다.

역설적이지만 승승장구하던 트위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바로 자신이 추진한 사업들의 비용 상승과 조직원의 배신이었다. 뉴욕 시의 채무와 세출 증가에 의구심이 제기되면서 반(反)트위드 세력의 결집과 세금 인상에 보수적인 공화당의 개혁운동에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트위드의 비리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도 대부분의 빈곤층은 여전히 그를 지지했다. 자선사업가로서 트위드의 이미지는 대중의 가슴에 따뜻함으로 각인되었지만, 추운 겨울 그가 나눠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공짜가 아니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40여 년 전 지구 정반대편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트위드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개발사업과 건설 비리가 트위드의 한국판이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최근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원전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정책학자는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고, 경제학자는 경쟁이 가능한 시장 조성을 주문한다. 원전 내부에서는 일손이 부족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항변한다. 그래도 가장 시급한 것 한 가지만 고쳐야 한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조직문화와 인적 쇄신이라고 답했다. 아무리 제도를 바꿔봐야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곰팡이 포자는 항상 공기 중에 떠다니다 습도와 온도, 양분이 맞아떨어지면 금방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번식한다. 부패도 다를 바 없다. 이념과 시대를 초월해 생존해온 부패의 역사를 우리는 목도해오지 않았는가. 정부 본연의 업무인 배분정책이나 공무원의 재량권을 권력으로 여기는 순간, 선한 정부(good government)는 부패한 정부로 손쉽게 변질된다. 온정주의로 가장한 형님문화와 밀실 정치, 선심 행정은 또 다른 부패의 씨앗이다. 긴 장마에 여기저기 곰팡내가 심상치 않다. 부패 척결 없는 창조경제는 사상누각이며, 신뢰받는 정부 3.0은 허상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트위드에 관한 부분은 9월에 출간될 필자의 공저인 ‘한국사회의 부패: 진단과 처방’에서 일부 인용했다.)

박순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psoon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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