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5월 넘기는 ‘100% 대한민국’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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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정치부장
박성원 정치부장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던 2004년 총선을 앞둔 무렵.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대표 취임 후 첫 지역 방문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호남지역에서 한 석이라도 얻을 가능성이 사실상 전무한 데다 불상사의 발생 가능성도 우려한 참모들은 이날 박 대통령과 상의 없이 하남공단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몰래 바꿔놓았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박 대통령은 차를 돌리라고 했고, 결국 광주 충장로로 향했다. 이후에도 대표로 있던 2004∼2006년 해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2004년 8월에는 전남 구례에서 2박 3일간의 의원연찬회를 마친 뒤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동하고 5·18 묘역을 참배했을 정도로 광주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박 대통령으로선 당선 이후 처음 맞은 5·18 기념식이 ‘임을 위한 행진곡’(행진곡) 논란으로 ‘반쪽’이 돼 버린 데 대해 착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되짚어 보면 ‘행진곡’을 둘러싼 갈등은 정부가 자초한 대표적인 정책 실패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행진곡’은 지난해에도, 2011년에도 행사 중에 합창단이 불렀다. 2003년 5·18 기념식이 정부 행사로 승격된 이후 사실상 기념곡처럼 불려왔다. 그런데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2일 광주를 방문해서 “5·18 기념식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서를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박 처장은 그 이유로 “5·18 기념식은 광주시민만의 행사가 아니고 정부의 기념행사다.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기념곡 제작을 위한 (4800만 원의) 예산을 반영했다”고 했다. ‘행진곡 퇴출 시도’라는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것이다.

박 처장의 말은 이렇게 수정돼야 할 것 같다. “5·18 기념식은 정부만이 아니라 광주시민, 나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함께 일궈온 국민의 기념행사다.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고 있는 관습법 같은 노래를 제쳐놓고 4800만 원을 쓰겠다는 것은 예산 낭비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 당시 “야당처럼 ‘1% 대 99%’ 대결로 편을 가른다면 우리의 미래가 없다”면서 ‘100% 대한민국’을 이루겠다고 했다. ‘행진곡’ 논란 하나 정리하지 못한 채 5월을 넘긴다면 내년 5·18을 앞두고 또다시 불필요한 갈등으로 100% 대한민국은 요원한 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진곡’을 아예 5·18 기념곡으로 채택함으로써 갈등을 끝내고 국민대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실천 의지를 보여주면 좋겠다.

5월 달력을 넘기고 6월을 맞으면서 한 가지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만한 일이 있다. 6월 15일 전남 목포시 삼학도에 문을 여는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개관식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어떨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1999년 ‘역사와의 화해’ 차원에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뒤 국고보조금 200억 원을 지원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0월 그런 김 전 대통령과의 2004년 만남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동서화합이 중요하고 여기서 실패하면 다른 것도 성공하지 못한다. 내가 못한 것을 박 대표가 하라. 미안하지만 수고해 달라’고 했다. 제가 그 말에 보답해야 할 때다. 그 길은 동서가 화합하고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이 화합하고 지역 간 갈등과 반목을 없애는 것이다. 국민대통합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갈 때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역사가 된 과거를 오늘 국민의 자산으로 끌어안고 가겠다는 후보 시절 초심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100% 국민통합’은 조금 더 가까이 올 것이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
#박근혜 대통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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