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01>강으로 나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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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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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 나간 사람
―조용미(1962∼)

아무 일 모르고 강가로 가는 사람은
흰 아그배꽃 핀 걸 알게 되고
바람부는네시를모르고강가로가는사람은
바람 많은 다섯 시를 가지게 되고
거북한 속을 달래려 강가로 나가는 사람은,

아무 일 모르는 흰 아그배꽃은
강가 걷는 걸음걸일 알게 되고
바람 많은 강은 바람 많은 다리를 만들고
물무늬를 그리고,

흰 아그배꽃을 피우고 강은
찬바람을 줄이느라 강물은
깊어 혼자
아무 일 모르고 강으로 나간 사람을
세워 두고, 세워 두고


문득 이브 브레너가 스캣으로 노래한 ‘강가의 아침’이 아득히 밀물져 들려온다. 강가에 나가본 게 언제 일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무 일 없이 그냥 산책 삼아 강가로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소화가 안 돼 좀 걸으려고 강가에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답답하고 시끄러운 속을 달래려고 강가를 거니는 사람도 있을 테다. 강이 좋아 강가로 가면 강물 말고도 다른 뭔가를 보게 된다. 물새라든지 거룻배라든지 노을이라든지. 이 시에서는 흰 아그배꽃이다.

‘바람맞았다’는 말이 있다.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아서 기다림이 헛되게 된 경우를 뜻하는데, 가슴에 휑한 바람이 부는 듯해서 그런 표현이 생겼을 테다. ‘바람 부는 네 시를 모르고 강가로 가는 사람은/바람 많은 다섯 시를 가지게 되고’. 그렇게,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 않는 그 사람’ 때문에 허전한 걸음걸이를 ‘아무 일 모르고’ 가만히 피어 있던 아그배꽃은 보게 되리라.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하염없이 강물을 내려다보는, ‘깊어 혼자’인 사람을. ‘아무 일 모르고 강으로 나간 사람’의 하얀 마음, 하얀 아그배꽃, 하얀 바람, 하얀 강물. 온통 하얘서 박하처럼 화하고, 또 쓸쓸하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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