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내 가짜 대학, 유엔평화대학뿐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8일 03시 00분


‘유엔총회가 설립한 인재 양성의 전당’이라는 홍보문구를 내세워 2010년 석·박사 과정을 개설한 유엔평화대학 아시아태평양센터는 유엔 기구도 아니고 학교 설립 인가를 받은 적도 없다(본보 7일자 A1·3면). 이곳은 외교부에 재단법인으로 등록한 유피스 AP재단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임차한 건물을 사용하며 전임교수 중 1명이 최근 해임돼 1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내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재단법인은 학교를 운영할 수 없다. 지금까지 학위 과정을 불법으로 운영한 셈이다. 교육부는 8일 조사에 착수해서 사실이 확인되면 이달 폐쇄 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외교부도 재단 실태를 파악한 뒤 설립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제기구가 보증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말을 믿고 700만∼800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재학 중인 학생 25명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아시아태평양센터 측은 “국제 협정에 근거해 외국 학위를 받는 만큼 교육부 허가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민간단체가 국내에서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려면 교육당국의 인·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여전히 석·박사 과정 수시전형을 홍보하는 팝업창이 뜨고 저명인사들의 특강 장면을 소개한 동영상이 올라 있다. 비인가 학교가 버젓이 학생 모집과 교육 활동을 하는데도 교육당국은 처음부터 몰랐던 것인지 알면서 방치한 것인지 궁금하다.

2000년대 들어 정부가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교육기관 유치에 나서면서 지난해 3월 미국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뉴욕주립대가 인천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도 일류 대학을 다투어 유치하고 있다. 카타르가 도하에 설립한 코넬대 의대 분교 등은 ‘중동의 미니 아이비리그’라는 명성을 얻었다. 싱가포르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MIT 같은 명문대 분교를 유치해 주변국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좋은 대학을 유치하면 학생들은 유학 가지 않고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국내 대학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당국은 이번 같은 사기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국내에 진출한 외국 학교의 실태 조사와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비인가 대학 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사실 여부를 충실히 가려 학교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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